[뷔민]화양연화_12



타인의 입을 통해 들은 지민이와 나 사이의 정의가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쁜지 모르겠다. 거기다 우리 둘이 유난스러운걸 이상하게 보는 게 요즘에서야 왜 이렇게 거슬리는지 최현을 만나고 난 후 머릿속이 더 복잡해서 집중을 못해 형들에게 몇 번이나 털렸는지 모른다. 문득 자꾸 최현이 했던 말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지민일 의식하다 보니 전화가 오면 밖으로 나가서 통화를 한다거나 가끔씩 숙소에 늦게 들어오면 그게 그렇게 거슬릴 수가 없었다. 나만 이렇게 신경 쓰이고 거슬리는 건지 멀쩡해 보이는 박지민이 얄미워서 같은 공간에 있을 때마다 그날 밤이 생각나서 지민일 피해도 보고 시비도 걸어봐도 아무 말이 없이 눈치만 보는 박지민 때문에 짜증이 났다.


"태형아- 김태형! 너 피곤한 거 같으니까 이제 그만 가자"
"안 피곤하다니까. 괜찮다고! 몇 번 말해"
"........너 요새 왜 그래? 만날 때마다 싸우는 거 같애 우리"
"하아- 지수야 너 만나려고 시간 쪼개서 나온 사람한테 계속 가자고 하는 건 너잖아"

지수를 만나면 괜찮을까 싶어서 매일 저녁 무리하면서까지 만나도 대화에 집중하지 못해 사소하게 다투기까지 하다 보니 점점 지쳤다. 화를 내야 하는 대상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지만 갈피를 못 잡는 마음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던 내가 충격적인지 눈가에 눈물이 가득한 지수의 얼굴을 보니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하다가도 저렇게 나오면 또 마음이 약해져서 제자리걸음이었다.

"미안- 요새 스케줄 아니...하아 미안해 내가 아, 울지마..."

클럽에서 폭행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지수를 챙기지도 못하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도 이미 늦었었고 늦게 소식을 듣고 내 걱정을 해오던 지수에게 이유모를 죄책감을 느꼈었다. 말 못 할 이유가 생겨버려서. 그래서 더 박지민이 괘씸했다. 아무 말이 없는 박지민 때문에 나만 자꾸만 겉돌았다.

머리가 너무 무거웠다. 크리스마스였고 어제가 아니면 지수와는 연초까지 함께하지 못하는 일정에 정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새벽까지 같이 있다 보니 잠 한숨 못 자고 숙소로 돌아와 짐만 챙겨 비행기 안에서 겨우 기절하듯 눈을 부쳤다. 몸 상태도 별로 안 좋다 보니 기분도 다운이 돼서 리허설을 하는 내내 실수를 했고 자꾸만 틀리는 나 때문에 다들 예민해졌다. 쥐어짜 내듯 죄송하다는 말을 외치고 정신 차리겠다고 형들에게 도 미안함을 표하며 대열을 찾아서 섰지만 큐사인과 함께 박자를 놓치고 몸이 점점 늘어지더니 바닥이 가까워졌다.







"태형아!!!!!!!!"

세상이 뒤집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멀리서 내 이름을 부르며 사색이 돼서 달려오는 박지민을 끝으로 암전이었다.









"형! 형- 얘 왜 안 깨요? 태형이 괜찮은 거 맞아요?"
"지민아, 잠들었다잖아- 몇 번 얘기해 너땜에 깨겠다"
"너무 오래 자는 거 아니에요? 머리 다친 건 아니래요?"

눈을 뜨기 전에 귓가로 들려오는 웅웅 거리는 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먼저 들렸다. 누워있는 내 곁을 둘러싸고 있는 느낌과 희미한 소독약 냄새가 병원이란 걸 알았다.

"지민아, 너 윤기형은 걱정 안 돼?"
"윤기형은 멀쩡하다면서요"
"태형이도 멀쩡하다니까- 진짜 너네는 업어 키워 봐야 소용이 없다니까"

남준의 곁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지민의 목소리에 웃음이 나왔다. 우리 둘 다 일본에 마가 꼈는지 여름엔 지민이가 무대에서 쓰러지고 이번엔 나까지 그때 무대 아래 쓰러진 지민일 보고 심장이 멎을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박지민도 아마 그랬을까? 의식이 있는대도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었는데 걱정이 한가득인 박지민은 기절까지 해버린 나를 기다리면서 저렇게 전전긍긍하며 기다렸을게 뻔했다.

"형은! 애가 의식도 없구만 지금 그 말이 여기서 왜 나와요? 그리고 형이 뭘 절 업어 키워요! 형 지분은 2%나 될까 말 깐데"
"허! 참나 니네 이렇게 사이가 좋았냐? 진작에 잘 좀 챙겨주지. 태형이 요새 힘들어 보이던데"

남준이형 말에 입을 쏙 다물어 버리는 지민이 때문에 한동안 정적이었다. 또 분명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고
삽질할 박지민 얼굴이 눈 앞에 선했다. 매일 새벽 나갈 때도 지민이 깨어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지민이나 나나 서로 먼저 말하지 않았기에 난 또 그냥 나가기 바빴다.

"아- 진짜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네"
"태형아!!"

사색이 된 채로 침대에 달려드는 지민일 보면서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징하니 울리는 게 약간 어지러웠지만 아픈 티를 내면 또 걱정할까 싶어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니 보조의자에 앉아있는 걱정 가득한 남준이형 표정을 보니 미안함이 밀려들었다. 결국엔 공연이 무산된듯했다.

"형- 콘서트는요?"
"너도 기절하고 윤기형도 어지럽다고 해서 상의하고 접었어.
무리하면서까지 강행하는 건 아닌 거 같아서"
"윤기형도 아파요? 왜요? 어디가"
"형도 너무 무리했나 봐. 어지럽고 속도 안 좋다고 해서 검사하고 별 이상 없어서 먼저 호텔로 갔어"

나와 남준이형 대화에 끼지 못하고 멀거니 서있던 지민이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울었는지 코끝이 발갛고 입술은 퉁퉁부은게 너무 못생겼는데 그게 또 귀여워 보여서 기분이 이상했다. 저를 쳐다보는 건 또 금세 알고 슬그머니 남준이형 뒤로 숨는 박지민 때문에 다시 남준이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너도 너무 무리하고 갑자기 안무 격하게 춰서 그렇다는데, 그래도 검사 몇 가지 해야 한다 해서 너 깨길 기다렸거든"
"형- 지민이 있으니까 들어가세요"
"아니야. 내가 있을게 지민이 너 규호형이랑 들어가"

아까는 남준이형한테 조잘조잘 말도 잘하더니 아주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어버린 박지민은 뭔가 할 말이 잔뜩 있는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형. 저 태형이랑 할 말도 있고...제가 있어야 마음 편할 것 같아요.
형은 또 뭐 뿌실거 같아요......"

조용히 지 할 말을 다한 박지민을 보던 남준이형은 기가 차했지만 또 맞는 말이어서 반박은 안 했다.
나도 사실 불안했다.

"그래- 그럼 나가면서 검사해 달라고 하고 가야겠다. 중간에 상황보고 전화해. 히로키상 밖에 계시니까 나중에 설명 잘 듣고"

불안한지 연신 걸음을 못 떼는 남준이형을 문 밖에까지 배웅하고 들어온 지민이는 병실안에서도 의자에 못 앉고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나 얼마나 잤어?"
"어?.....음 한 세시간?"
"아 그래 저녁은?"
"먹었어 먹었어..너 배고...아"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들어선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때문에 더 이상 대화가 이어가질 못했다.



검사를 하러 간 태형이를 보내 놓고 그제야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호기롭게 남겠다 했지만 둘 만 있는 공간에 숨 막힐듯한 긴장감에 몸이 힘들었다.
무슨 정신으로 무대를 했는지 태형이가 쓰러짐과 동시에 윤기형도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버려서 다들 너무 놀라 무대 위가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순식간의 일어난 일이라 형들이랑 우왕좌왕하는 사이 스텝들이 빠른 대처로 두 사람을 병원에 보내 놓고 잠깐의 회의 끝에 입장한 팬들을 봐서 노래 몇 곡은 하자는 결론이 나왔고 윤기형과 태형이가 없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데 눈물이 흘러나와서 미칠 것 만 같았다. 간신히 끝낸 무대 아래로 내려와서 쏟아지는 눈물을 막지 못하며 태형이한테 가자고 형들을 닦달하며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태형이가 혹시나 잘못될까 벌벌 떠는 나를 형들이 달래줘도 진정되지 않는 마음에 너무 무서웠다. 숨기지 못한 내 마음이 결국엔 탈이나 버려서 태형일 저렇게 만든 게 꼭 저인 것만 같아 슬펐다. 가만히 누워있는 태형이의 얼굴을 보니 간신히 진정이 됐지만 깨어나지 않는 그 시간이 저에게 벌을 주는 것만 같아서 야속했다.



우리 이제 한 공간에 같이 있는 것도 어색해진 걸까. 침대께에 있는 의자에 고갯짓을 하며 앉으라고 권하는 태형의 말에 눈치가 보여서 괜히 이것저것 먹을 거를 권하며 부산스럽게 말을 이어 나갔지만 따라붙는 시선에 담담하게 대꾸했지만 여전히 시선은 태형이 아닌 탁자에 놓인 물병 언저리에 닿아있었다.

"왜? 할 말 있어?"
"내 좀 봐. 아까부터 왜 안 쳐다보노"
"뭐가?... "
"지민아-
내 진짜 많이 생각했다,
그동안 네가 얼마나 마음고생했을까
내가 힘들 때 닌 내 옆을 지켜줬는데"


심장이 두근거렸다.
다시 돌아온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웃고 떠들고 함께 같은 길을 걷는 우리. 이대로 내 마음만 숨기면 우리가 친구로 돌아갈 수 있을 길. 편한 길이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게 왜 비난받아야 되는 건지 내가 비난할 자격도 없는데 말이지. 그치?
내가 그동안 너무 심했제 미안. 사실 계속 얘기하고 싶었어. 윤기형이랑 그때 얘기했을 때도 형이 내보고 내가 사실은 니를 너무 걱정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라고 하는데 솔직히 맞는 말 맞데 친구라서 다 이해해줘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남들이 다 비난해도 난 네편이었야하는데 미안 내가 진정한 친구 자격이 없다 그자?"


짝사랑을 하는 모든 이의 첫 번째 소원은 아마도 한결같겠지. 내가 좋아하는 이도 나를 좋아해 준다면 그런 상상을 하고. 조용한 병실안을 울리는 태형의 솔직한 말에 가슴이 먹먹했지만 오늘이 아니면 영영 이 미련 가득한 마음이 평생 가시처럼 남을 것 같았다. 어쩌면 친구로서도 옆에 남을 수 없다 해도...


"여름이었을 거야, 너무 덥고 짜증 나고 연습에 지친 하루였었어. 언제 데뷔를 할지도 모르고 불안한 연속의 나날이었지....넌 이미 그때 데뷔를 앞두고 있었어 난 네가 부럽다가도 화가 났어 왜 난 안되는데 넌 항상 쉬워 보였거든 그래서 더 열심히 했어 근데 네가 그날 학교 뒤뜰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봤어 서있기만 해도 더운데 넌 두 시간 내내 춤을 추더라...."


"너 진짜 멋있었어 그때"
"지민아..."
"그냥 멋있었다고.
그땐....그냥....너 나한테 그랬어.
멋있는 경쟁자. 좋은 친구. 다정한 김태형..."


태형의 낮은 한숨과 거부에 손이 살짝 떨렸지만 지금의 선택이 둘 사이의 얼마나 많은 변화를 줄지 알고 있지만 멈춰버리기엔 너무 늦어버려서

숨 막힐듯한 정적이 이어졌다.


"근데....그랬는데...
어느날..니가 반짝반짝 빛나더라고"
"말하지 마"
"........"
"지민아 안돼"


잔뜩 가라앉은 태형의 목소리가 그의 기분을 대신하는 것 같았지만 나를 외면하듯 고개를 숙이는 태형이의 모습에 잠시 생각에 잠긴듯하다가 숨을 내뱉듯 다시 말을 이어갔다.









"좋아해. 태형아 너 좋아하고 있어"




담담하게 말을 내뱉고 태형의 얼굴을 바라보니 아무 표정 이 없는 태형 때문에 홀가분하고 괜찮을 것 같던 마음이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아팠다. 그래서 그대로 태형이에게서 등을 돌렸다. 근데 등 뒤로 꽂히는 태형이의 말이 더 절망이었다.


"하아.. 더 이상 친구도 못하겠다....."


눈물이 가득한 눈동자가 너무 아파 보였지만 해줄 수있는 말이...저렇게 밖에 할 수 없어서 미안했다.
미안해- 울음을 삼키느라 떨리는 목소리로 사과하는 지민의 한마디에 명치께 가 답답해졌다.



지민씨 괜찮아요?

잠깐만 나갔다 올게요.


문 밖에 있던 히로키의 놀란 목소리가 병실까지 들려왔지만 저 문을 열고 나갈 용기가 없어서 애꿎은 이불만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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