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민]화양연화_10




"왔어? 앉아- 친구들이 너 보고 싶다고 얼마나 괴롭히던지 왜 그래? 아, 내가 얘기 안 했나?"




눈 앞에 상황을 이해하려고 해도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 멀거니 서있으니 그의 친구들이 어서 오라고 엄청 보고 싶었다며 너스레를 떨며 반겨주는데도 마주 인사를 할 수가 없었다. 그의 의중이 너무 명확해서 어이가 없어 그를 내려보며 아무 말도 않고 서있으니 그가 팔을 당겨 옆자리에 앉히며 어깨를 감싸 안아왔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웃어주며 정신이 없어서 깜박했다며 귓가에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에 소름이 돋아서 앞에 앉아있는 그들을 찬찬히 바라봤다.
최현 사단이라고 할 만큼 화려하고 유명한 그의 지인들은 유명세에 걸맞게 오만했고 건방진 건지 아님 그와 나사이를 다 알고 있어서 그런 건지 초면인 나에게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태도로 대해왔다.


"제수씨라고 해야 되나? 아아 알았어 새끼야!
지민씨 반가워요. 나 알죠? 주훈이형이에요-
아아 지민이 실물이 더 귀엽네"


술에 취한 건지 어눌한 말투로 자존심을 긁어대며 누가 들어도 무례하게 희롱하는 태도에 그가 테이블에 위에 얼음을 이주훈에게 던지며 장난치지 말라며 으르렁 대는 걸 들으면서도 깔깔대며 웃어대는 그 사이에서도 앞만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둘이 멤버 아니야? 왜 처음 보는 사람처럼 그래?
너네 웃긴다. 아 설마... 두 사람일. 태형인 몰라?"

자신의 입을 가리며 내가 말하면 안 되는 걸 말했냐며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를 만든 이주훈의 말에 그의 친구들은 웃기다면서 태형일 모르는데 현이가 왜 불렀겠냐면서 그를 타박하는 걸 들으면서도 웃을 수가 없었다.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태형이의 얼굴에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몰려와서 무릎 위에 주먹을 움켜쥐며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태형이도 내가 이 곳에 올 거라고 생각을 못했는지 아니 상상이나 했을까 태형이와 내가 이렇게 마주 앉아있을 거란 걸.
꽉 다문 입매와 싸늘한 태형이의 시선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테이블 언저리에 머무는 시선에 그가 우연히 태형일 만났지 뭐냐면서 반가워서 술 한잔 하자고 했다며 놀랐냐면서 물어오는 목소리가 가증스러울 정도로 천연덕스러워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도 영화 촬영 때문에 바빴고 나도 컴백 준비로 바빠서 자연스레 소원해졌고 바빠진 만큼 더 간섭하고 소유하려고 하는 그의 집착에 미칠 것만 같았다.

"지민씨, 현이가 잘해줘요?"
"야! 넌 입 좀 다물어라"
"누가 너한테 물어봤냐! 지민이 목소리 좀 들어보자"

쏟아지는 시선이 부담스럽고 어깨에 올라온 팔이 신경이 쓰여서 몸을 틀어봐도 그는 감싸 안은 팔에 더 힘을 주며 죄어왔다. 태형이 눈치를 보느라 얼굴도 제대로 못 들고 있는 나를 잘 알고 있는 그는 보란듯이 더 다정하게 굴었다.


"선배님- 죄송한데 저 자리를 너무 비워서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선 태형인 그와 친구들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해왔다. 깜짝놀라서 태형일 올려봤지만 등지고 있는 조명때문에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무서우니까 곁에 있어달라고 입밖으로 태형일 부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끝까지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태형인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어디서 많이 봤는데...
어두운 조명과 화장기 없는 옆얼굴에 기억이 바로 나지 않아서 한참을 그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통화를 하면서 익숙하게 흘러나온 최현의 이름에 우진과 함께 그때 어워즈에서 만났던 그 선배라는 걸 알았다.
한 번 본 사람들은 잊지 않는 내가 바로 기억을 못 한다는 건 그다지 나에게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듯 같이 있는 사람들이 우진이 얘기했던 최현의 찌라시의 지인들도 함께여서 마주쳐서 인사도 하고 싶지 않아서 등을 돌리려 했다. 프라이빗한 라운지 바 답게 많은 연예인이 있는데도 주변 신경 쓰지 않고 즐기는 사람들 때문에 가까이서 마주치지 않았다면 그들이 유명인인 줄도 모를만큼 그들은 주변을 의식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자연스레 다가갔다.

"이야-어린애 사귀더니 얼굴 좋다"
"장난하냐"
"아다라고 좋아하더니 아직 안 땄냐?"

그의 친구가 웃으며 놀리자 최현이 인상을 팍 구기며 담배를 문 잇새로 욕설을 내뱉었다.
기둥 뒤로 가려져 몸을 돌리고 있어서 몰랐는데 소파에 몸을 깊게 묻으며 담배를 꺼내 무는 최현을 보는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질 낮은 농담을 하는 인간을 친구랍시고 어울리는 거에 열 받아서 골이 당겨왔다.
분명 지민이를 상대로 저런 더러운 소리를 지껄이는 거겠지. 양아치 새끼들
끼리끼리 논다더니 잘생기고 남자답다 생각했던 얼굴이 한순간에 추잡하고 질 나쁜 악당같이 보여서 마시지도 않은 술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상상했던것보다 더 질이 나빠 보이는 모습에 또 열이받았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겉모습은 한없이 다정하고 젠틀해 보였지만 속을 알 수 없고 본심이 뭔지 모를 것 같은 그의 태도에 항상 저에게 뭔가 적대적인 느낌이 들어 불편했다. 또 이상하게 지민이에겐 고압적인 그의 태도에 눈살이 찌푸려졌었다.


"후우- 원래 이쪽 아니야. 걔"
"엥? 게이도 아닌데 너랑 왜 사귀냐"
"그런게 있다"


담배를 피우며 잠시 생각에 잠긴듯하더니 쏟아지듯 내뱉는 그의 말에 정신이 없었다.
무슨 소릴하는건지 이해가 안 가서 멍하니 서있었고
그의 친구들은 노말도 꼬신 최현 대단하다면서 그를 치켜세우며 장난치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지민이에게 말 못 할 일이 생긴 것 같아서 걱정이 됐다.
일본에서도 그렇고 마주칠 때마다 안절부절못하며 눈치를 보거나 최현 얘기만 나오면 잔뜩 얼어선 표정이 흐려지곤 하는 지민이 의아하긴 했었는데 저들의 대화에 더욱 의문이 들었다.

어느샌가 시야에서 사라진 최현을 찾으려 둘러봐도 보이지 않아서 테이블로 돌아왔다.
술에 취해 화장실에 빠진 줄 알았다며 놀려오는 목소리에 무슨 입에도 안 댄 술을 운운하는 미친 소리를 하냐고 웃어넘겼다.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하던 기범이의 생일파티에 지수와 함께 초대받았고 다행히 스케줄이 맞아서 오랜만에 모인 모임에 기분이 좋았었는데 모든 상황에 신경 끄고 집중하려 해도 지민일 반찬삼아 지껄이는 그 말들이 계속 생각이 나서 애꿎은 탄산수만 들이켰다. 이가 시릴 만큼 차가웠지만 속이 답답했다.


"안녕- 오랜만이다. 여자 친구?"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리니 예의 그 여자들이 넘어가는 멋있는 웃음을 지으면서 함께 자리에 있는 친구들에게 매너 있게 인사를 하며 반가운 척을 해왔다. 옆에 있던 지수는 깜짝 놀라서 어머-어머 만 외치면서 눈이 휘둥그레졌고 놀라기는 애들도 마찬가지여서 상기된 표정으로 최현을 보며 반겼다.

"안녕하세요. 태형이 친구들인가 봐요 최현입니다"

가식적이기 그지없는 그의 행동에 어이가 없어서 어색하게 웃으며 일어나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여기서 선배는 무슨 형이라고해-
태형아, 형 친구들한테 와서 인사 좀 하고 가. 너 보고 싶어 한다"

헐 언제부터 친했다고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면서 멋쩍은 듯이 부탁하는 그의 말에 애들이 얼른 가서 인사하고 오라며 등 떠 미는 걸 말릴 수가 없었다.
옆자리에서 지수는 눈을 반짝이며 최현에게서 눈을 못 떼고 있었고 고딩때 부터 친하던 모델 친구들은 그를 경외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남자의 자존심 따위 없이 그에게 악수를 청하며 형님 멋지십니다 하는 꼴을 보니 속이 뒤틀려서 거절의 말을 하지 못하고 그를 따라나섰다.
거의다가 처음 보는 그의 지인들은 실물론 처음이었지 꽤나 다 유명한 배우며 모델들이어서 언제 그런 추잡한 말을 했냐는 듯 다들 살갑게 인사해오며 반겨줬다. 우진의 선배와도 초면 인척 인사를 해와서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남자들만의 모임이어서 그런지 술을 다들 꽤나 해서 권해 오는 걸 거절할 수가 없었다. 처음 몇 잔은 분위기상 잘 받아 마셨지만 올라오는 취기에 천천히 하겠다며 뺐다. 자존심까진 아니었지만 초면인 그들에게 흐트러진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까 최현과의 대화는 내가 잘 못 들은 것처럼 그들은 유쾌하면서 젠틀했다.
약간 어지러운 시야가 확 밝아졌다. 웅성거리는 테이블과 반색을 하며 반기는 최현의 목소리에 누구길래 저러나 싶어 고개를 들어 돌리니 눈 앞에 있는 박지민에 어이가 없어서 술이 확 깼다. 굳이 이렇게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는데 표정 관리가 안 됐다.






"어! 태형아 왔어- 지금 완전 재밌는데 얼른 앉아"

또 최현은 어디로 사라진 건지 테이블을 둘러싼 그의 잘난 지인들은 지민일 가운데다 두고 헛소리를 늘어 놓고 있었다. 잔뜩 움츠러든 지민이의 어깨를 보니 술이 오르면서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변태 같은 새끼가 내뱉는 말들은 입에 걸레를 물었는지 최현과의 잠자리까지 들먹이는 말을 내뱉는 이주한을 노려보며 곧장 테이블로 다가섰다.



"일어나. 가자- 씨발 저 개소리 계속 듣고 있을 거야?"


내 팔목을 움켜쥔 태형이 큰 손이 너무 뜨거워서
내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상상해봐도 짐작이 안돼서 멀거니 태형일 올려다 바라봤다.
미간은 있는 데로 찌푸리고 있으면서도 오롯이 나를 내려다보며 눈을 맞춰오는 그 시선에 팔목을 끌어당기는 힘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태형이의 말에 발끈한 이주한은 테이블을 박차며 일어서서는 태형일 노려보며 시비를 걸어왔다.

"그래- 개소리요. 술 쳐 먹었으면 곱게 쳐드시던가 애하나 앉혀놓고 입으로 나불나불..."

맞받아치는 태형이에게 말릴 새도 없이 달려든 이주한은 있는 힘껏 주먹을 뻗었고 그대로 얼굴을 맞은 태형이는 내 팔을 붙잡고 있던 손이 떨어지면서 바닥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태형아!"

테이블 위에 것들이 쓰러지는 소리와 싸움을 말리려고 달려드는 일행들의 시끄러운 소음에 시선이 몰려들었지만 너무 놀라서 웅성거리는 소음도 눈 앞에 어지러운 상황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지인들이 눈이 벌게져선 악을 쓰며 씩씩거리는 이주한의 팔의 붙잡고 말리는 걸 노려보며 바닥에 넘어진 태형일 일으켜 세웠다.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입술이 터져서 피가 흐르는 걸 보니 눈 앞이 핑 돌면서 손이 부들 거리정도로 화가 차올라서 손등으로 입술을 훑던 태형이의 눈이 동공이 풀리면서 주먹을 움켜쥐는 걸 보며 태형이 보다 한 발 더 빠르게 무방비하게 서있던 이주한의 얼굴로 주먹을 휘둘렀다. 얼굴을 제대로 때렸는지도 모를 만큼 흥분해서 거의 이주한에게 달려든 나를 당황한 그의 지인들이 떼 놓으려 붙잡는걸 안간힘을 쓰고 버텼다.

"후우..형님, 제수씨 손맛 어때요? 하아...이제 눈 제대로 보이세요?"





클럽에서부터 술도 깰 겸 아무 말 없이 둘이 나란히 걷다 보니 둘 다 엉망인 몰골로 숙소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결국엔 놀이터로 발길을 돌렸다. 제법 싸늘해진 날씨에 잔뜩 흥분했던 몸에 체온이 내려가면서 추위가 밀려왔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깨에 걸쳐지는 재킷에 고개를 돌리니 그제야 태형이의 얼굴이 눈에 제대로 들어왔다. 피딱지가 굳어있는 입가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입술 찢어졌다"
"쓰읍- 입안은 너덜너덜해 아"
"그러게 왜! 나서서는 나 약사올게 기다려"
"걍 숙소 가서 바르자"

벤치에서 일어선 나를 끌어당기는 손길에 다시 옆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술을 너무 마셨다며 어깨에 기대 오는 태형이 때문에 놀라서 순간적으로 숨 쉬는 것도 잊고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쪼꼬만한게 맞으면 어쩔라고 하여튼 깡은.
박지민이 아까 쫌 멋지드라"

말려대는 그의 지인들과 놀란 태형인 내 허리를 끌어안으며 이주한과 떼어놓았다. 분이 풀리지 않아서 씩씩거리는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온 태형이는 그대로 내 팔목을 끌고 그대로 대로변으로 나왔다.
그 뒤로는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순간적으로는 아무 생각 없이 이주훈을 때렸지만 대형사고를 쳐버리고만 불안감에 머릿속이 복잡하단 걸 눈치를 챈 건지 아무 말 없이 손을 꾹 잡아오는 태형의 온기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가 먼저 태형일 때렸지만 고소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컴백이 코 앞인 상황에....



"지민아-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뭔데?"
"최현....너 진짜 최현...좋아해?"
"태형아....있잖아.."


조용히 물어오는 태형이의 음성에 진정하려고 숨을 집어삼켜도 보고 낮게 심호흡도 해봤지만 내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아서 자꾸만 튀어나오려고 하는 말들이 괴로워서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
기대있던 고개를 들고 눈을 맞춰오는 태형일 차마 바라 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렸다.


"왜 대답이 없노?"
"만약에....그..만약에..내가.."



무릎에 올려둔 손바닥에서 땀이 새어나와서 바지를 꾹 쥐어 잡으며 말을 이어가려고 했는데 가만히 나를 바라봐주고 있는 태형이의 걱정어린 눈길이 너무 따뜻해서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멍하니 태형일 바라봤다.




"미안해....태형아...미안"



참을 수가 없는 떨림과 충동에 그대로 태형이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이미 제어가 되지 않는 내 마음은 길을 잃었다.
두 번 다시 마주 보며 웃을 수 없다고 해도 지금 함께하고 있는 이 순간에 취해 저지른 실수를 아니 용기를 후회할 것 같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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