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민]화양연화_28





"지민아 자?"

드라마 추가 촬영 때문에 일본 스케줄은 참석하지 못하는 전날이었다. 콜타임 때문에 숙소에 들러서 씻고 바로 출발해야 해서 얼굴이라도 잠깐 보고 싶어서 지민이네 방문을 두드렸다.


"어...."
"아...태형아 왔어? 지민이 아직 연습실"
"아 진짜요? 알겠어요 형 자요 더 자요. 저 씻고 바로 나가야 돼서 조심히 잘 다녀와요"
"어어 태형이 너도 고생해라"


드라마 촬영은 포스터 촬영과 인터뷰다 뭐다 계속 추가가 됐고 방탄 스케줄과 겹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빠지게 되는 일이 잦았다. 내 촬영분이 끝났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었다. 지민이와는 오히려 드라마 촬영할때 보다 얼굴 보기가 더 힘들었다. 곧 연말이어서 각 방송사마다 연말 무대 준비도 해야 하고 중간중간 일본 팬싸인회 때문에 일본도 가야 하고 컴백 이후로 정말 개인적인 시간은 사용할 수가 없었다. 멤버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쉴틈 없는 스케줄에 가끔은 지치는 날도 있었다. 몸도 마음도 지치는 그런 날. 우울하거나 힘들거나 슬픈 생각은 되도록이면 하지 않으려고 해도 혼자 스케줄을 하다 보면 문득 공허함이 몰아 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귀신같은 지민인 힘내라는 애교섞인 문자와 영상통화도 자주 걸어오며 외로움을 느낄 수 없도록 해줬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지친 건지 뭐든 게 다 귀찮고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며칠 아니 단 하루라도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약간 현실을 탈피하고 싶은 마음 같기도 했다. 혼자 멋있는 척 쿨한척하며 지민이 앞에선 힘들지 않다고 오히려 지켜주고 싶다고 온갖 폼을 다 잡던 그 어느 날엔 정말 지민이에겐 멋있게만 보이고 싶은 게 사실이었지만 한계에 부딪히니 나도 사람인데 지치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한 번 우울이 시작되니 감당하지 못할 만큼 몰아쳤다.


"후우..."


씻어야 하는데 갑자기 그것마저도 귀찮아서 소파에 모로 누웠다. 지금 당장 지민이에게 기대고 싶고 투정도 부리고 싶은 순간이었지만 옆에 아무도 없다는 게 짜증이 나서 핸드폰을 집어 들었지만 연습하고 있는 애한테 또 괜한 투정일까 싶어 핸드폰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친해지는 건 늘 즐겁고 설레었다. 그런 감정들 때문에 외로움을 덜 느끼기도 해서 사람들과 친목을 다지고 일탈을 하는 게 신선함을 주기도 했다.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이기도 했다. 방탄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김태형으로 봐주는 그 갭 때문에 설레기도 하고 멤버들 지민이와 있으면 편하지만 이제는 가족 같은 그것 때문에 너무 편해서 형들이나 지민이 에게는 말 못 하는 그런 것들이 또 다른 나로 또 다른 세계로 눈 뜨게 해줬다.


".....형아! 한성아!"
"네...네?!"
"이 느무자식 지금 정신 빠졌지 말입니다!"
"에이 아니에요 형들 자- 짠"
"너 또 여친 생각했지? 아 정말 연애 안 하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오랜만에 만나는 화랑 형들과 스케줄의 마지막은 항상 술이었다. 술을 잘하는 것도 좋아하지도 않지만 분위기가 사람이 그리워 항상 마지막까지 함께였다. 스케줄을 핑계되며 몸을 사려도 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 콜라를 섞은 소주잔을 높이 흔들었다.


"너 내일 스케줄 있다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아 행님- 오랜만인데 막내가 빠지면 되것습니까?"
"올 짬밥 좀 먹었다고 눈치가 백 단이지 말입니다"
"민호야 후배 교육 제대로 시켰는데"


칙칙하게 남자들끼리만 있는데도 수다도 많고 즐거웠다. 형들과는 언제나 음악 얘기 방탄의 미래에 대한 대화가 주제였다면 정말 소소한 일상이나 나라는 사람에 대해 돌아보고 연기에 대한 궁금증이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항상 새로웠다.


"어! 태형아 전화 온다. 오올 우리애기 뭐냐"


형들은 이미 1차에서부터 밥과 함께 한 잔씩들 해서 취기가 많이 오른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만 있는 독립적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좀 많이 시끄러웠다. 윤우형이 닭살이라며 소리를 지르며 내 핸드폰을 들고 흔들면서 본인이 받아서 놀려주고 싶어서 안 달나 했고 미처 말리기도 전에 초록버튼을 누르는 걸 보고 말았다. 형들은 항상 내 여자 친구가 누구인지 궁금해했고 드라마가 다 끝나고 나서 가진 술자리에서 배우인지 가수인지만 말하라던 서준이 형의 절박함에 나도 모르게 가수라고 답하는 바람에 민호형과 형식이 형이 소리를 지르며 서준이 형에게 술 값을 다 몰았을 때 형들이 나를 두고 아니 지민이를 두고 내기를 했다는 걸 알았다.


"여보세요!.....애기님! 여보세요"


핸드폰을 뺏으려는 나와 형의 실랑이에 형들은 웃기다며 오히려 내 팔을 붙잡고 윤우 형과 차단해버렸다.
아마 당황한 지민이 입을 다물었는지 윤우 형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나쁜 사람 아니라며 다급하게 얘기했고 웃겨 죽는다며 쓰러지는 형들에게 안 들린다고 조용하라며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분위기를 장악했다. 다 같이 합심해서 조용해진 방안에 윤우형의 음흉한 미소에 다들 웃으며 귀를 기울였다.


"아아 네 안녕하세요.....네? 누 누구 아 지..지민씨
안녕하세요. 저는 조윤우입니다"


망했다. 그냥 지민이가 놀라서 전화를 끊길 바랬지만 서로 통성명이라도 하는지 당황한 윤우형은 나를 바라보며 고갯짓을 하며 보이지도 않는 인사를 연신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형에게 손을 내밀자 바로 핸드폰을 건네주는 걸 받았다.


"내가 좀 있다 전화할게"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내가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니 여전히 당황한 윤우형이 장난쳐서 미안하다며 사과를 해왔고 형들도 뻘쭘해하며 이게 무슨 일 이냐며 어이없어했다.


"형들이 저 괴롭히니까 제가 딱 어 방치를 아니 방지를 해놨죠"
"뭐야 우리가 당한 거야?"
"그런 거죠! 제가 지민이랑 장난친다고 저장해놓은 거 안 바꿔가지고 에이 어쨌든 진짜 울 애기는 비밀입니다"


한바탕 실랑이를 하고 나니 화장실을 간다며 자리를 비운 형들을 뒤로하고 핸드폰을 켰다.
지민이에게 짜증낼 일이 아닌데 괜스레 불똥이 튀었다. 내가 연락처 저장을 똑바로 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데 술이 몇 잔 들어가다 보니 속에 있던 진심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버렸다.


'미안 너 곤란해진 거야?ㅠㅠ' 오전 1:50
'아니 니 언제 들어오냐고 형들이 물어봐서...' 오전 1:51
'미안' 오전 1:51


하아 진짜 김태형 뭐냐 진짜. 본인도 황당했을 텐데 짜증 섞인 내 연락에 오히려 미안하다는 지민이의 카톡에 답장을 하지 못하고 한참을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다.



콜라를 섞어마셔도 술이 몇 잔 들어가서 그런지 알딸딸했다. 정신을 차리려 현관 앞에서 멍하니 서서 의미 없는 핸드폰만 꺼내 들었다. 들어올 때 연락하라던 지민이의 마지막 카톡에 답하지 않은 게 생각이 나서 오늘 내가 좀 많이 이상하고 지민이에게 예의 없이 대했구나 곱씹게 됐다. 놀고 싶다는 표현을 자주 하는 편인 나를 형들은 그럴 나이라며 내가 조금은 자유롭게 어떻게 보면 제멋대로 굴어도 별말을 안 했다. 그 정도가 심할때는 지민이와 정국이를 비교해가며 혼낼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터치하지 않았었다. 요근래는 지민이 때문에라도 거의 밖으로 도는 일이 없었으니 잔소리 들을 일이 없기도 했고 막상 문을 열려고 하니 용기가 안 났다. 안 자고 있을까 봐. 뭐라고 하지 그냥 미안하다고 하기는 너무 성의가 없고 서로에 대해 많이 알다 보니 가끔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조금은 어렵기도 했다.


하아....지 침대는 내주고 바닥에 누워있는 걸 보니 또 열이 뻗쳤다. 날도 추운데 바닥에 담요 한 장 깔고 웅크리고 자고 있어서 마음이 불편했다. 미련하게 착한 것도 참 지민이 스러웠다. 분명 잠든 정국이를 깨우지 못해서 바닥을 선택 했을 거다. 지민이 침대에 떡하니 자고 있는 정국인 딱 막내다웠다 주는 것보다 받는 게 익숙한 막내는 유독 이런 식으로 지민이를 많이 괴롭히고는 했다.


".....지민아"
"...으음...어 왔어?"


살며시 흔들어 깨우니까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몸을 일으키는 지민이의 상체를 받쳐주며 옆에 쪼그려 앉았다.


"왜 이러고 자노. 내방 가자"
"아 괜찮아....지금 몇 시야? 아 3시..어차피 좀 있음 일어나야 되는데 뭐"


비몽사몽 하게 앉아선 소곤거리는 지민이의 팔목을 잡아당겼다.


눈을 뜨자마자 남준이 형에게 잔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려보니 옆자리가 휑했다. 눈을 감았다 뜬 거 같은 몸상태에 머리도 멍하고 몸도 무거웠다. 겨우 두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으니 컨디션이 엉망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벌써 시끌시끌한 거실로 들어서니 정국이 다리를 베고 조잘거리며 누워있는 지민이가 보였다.


"전정국이 오늘 하루는.."
"아!"


나도 모르게 힘 조절이 안돼서 퍽 소리가 날만큼 정국이 머리를 쥐어박고 말았다. 때리고도 조금 놀랐지만 머리를 붙잡고 고개를 돌리는 정국이도 열이 받았는지 표정이 안 좋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킨 지민인 살벌한 우리 둘 사이에 황당해했다.


"아 왜 때려요?"
"뭐가"
"왜 그래? 왜 왜"
"아 뷔형이 머리 때리잖아요"
"왜 애 머리를 때려 아침부터, 괜찮나?"


정국이 머리를 쓸어주며 나를 탓하는 지민일 보니 또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


"야 닌 니 방에서 자 왜 지민이 침대에서 자는데? 어? 그리고 니도 자고 있으면 깨워서 지방 가서 자라 하면 되지 궁상맞게 바닥에서 왜 그러는데 어?"


점점 언성이 높아지는 내 목소리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하 지민이 형이랑 게임하다가 깜박 잠들어서 어쩔 수없었어요 진짜 죄송하네요 지민이 형 침대 뺏어서 근데 형 그렇다고 아침부터 하 그냥 말로 해요"
"뭐? 뭘 잘했다고 눈을 부라리노 그냥 오냐오냐 해주니까 눈에 뵈는 게 없나"
"김태형! 아침부터 왜 이라노 진짜 그만해라"


기분이 상한 정국이의 대꾸에 같이 욱해버린 나도 형답지 못하게 정국일 몰아세우며 화를 냈고 결국 싸움으로 번졌다. 언성이 높아지는 우리 둘 사이에서 지민이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갔고 험악해진 분위기만 맴돌았다. 잔뜩 억울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정국이는 뭐라고 더 하고 싶어도 옆에서 말리는 지민이 때문에 씩씩거리기만 했다.


"정국아 형이 대신 사과할게. 미안 태형이가 오늘 기분 안 좋은가 보다....태형아 방에 가서 얘기하자"


대신 사과하며 정국이를 달래는 지민이한테 어이가 없었고 미처 입을 떼기도 전에 팔을 붙잡고 방으로 끌어당기는 지민이 때문에 화가 풀리지가 않았다.


"니가 이러니까 쟤는 당연한 줄 안다니까! 왜 니가 불편하면서까지 할 말 못 하면서 그렇게 사냐고"
"난 괜찮아 내가 괜찮다고, 아침부터 왜 그래 진짜 그리고 말로 타이르면 되지 정국인 무슨 날벼락이냐고"
"니 그러고 있는데 어떻게 신경이 안 써지노 신경이 쓰이지. 하아 그래 내가 괜히 오지랖이네...다른 사람은 그렇게 신경 쓰면서 옆에 있는 사람 생각도 좀 해라 진짜"


입을 열 때마다 서로에게 상처되는 말이 쏟아졌고 우리 둘이 싸울 일이 아닌데 한 번 터진 서로에 대한 불만에 속에 있는 말까지 내뱉기 바빴고 이미 상황을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와 버렸다.


".....하아...미안 하다. 결국엔 내가 잘못했네 니 신경 쓰이게 해서, 니가 요새 너무 힘들었는 갑다 오늘은 그만하자 이러다가 끝도 없겠다. 그리고 태형아 짜증 나거나 화나는 게 있으면 그냥 말로 해 괜히 시비 걸지 말고 내가 니 마음 다 아는 건 아니잖아 니가 말을 안 하는데 내가 어떻게 다 이해하겠노"


아무 말 없이 한참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다 결국엔 먼저 뒤로 물러선 지민이가 또 나에게 져주며 말을 건넸다. 지민이 자존심에 말을 안 했으면 안 했지 어쩔 수 없이 먼저 참고 숙이고 들어온 걸 알면서도 내 자존심에 난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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