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민]화양연화_21
호기롭게 외치던 게 어떤 방법이었는지 묻지 않은 게 후회가 됐다. 이제 형들이 있건 말건 나한테서 1m 이상 벗어나지 않는 태형이 때문에 숨이 막혔다. 그동안 태형이와 거리를 두던 게 무색하게 잠시도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태형이 때문에 메시지로 제발 눈치껏 행동하라며 틈날 때마다 보내도 감히 보내는 족족 읽씹을 하며 더 치대는 태형이 때문에 중간에서 형들 눈치를 보느라 매일이 피곤했다.
"제이케이 뒤차 타! 나 지민이랑 앉을 거야"
"태형아!"
"아 뷔형 뒤에 차 자리 불편하단 말이에여"
"그럼 우리 지민이가 그 불편한 자리 앉으란 말이가? 지민이가 니를 어떻게 업어 키웠는데!"
형들한테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만만 한게 정국인지 이제 아예 대놓고 정국이를 괴롭히는 태형이 때문에 하루에도 열두 번 쥐어박고 싶은걸 참고 있었다.
"씁- 형님이 얘기하는데! 빨랑 가라"
애가 입이 댓 발 나와선 터덜터덜 가는데 안쓰러워서 말을 걸려고 해도 내 손목을 틀어쥐고 차에 앉자마자 나를 끌어안는 태형이 때문에 진짜 심각해졌다. 형들이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불편한 심기 그대로여서 요 근래 무대가 아니면 숙소에선 말 한마디 안 했다.
"또복이 콜?"
"배 안 고파"
"아 진짜! 형들도 어쩔 수 없다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어떻게 그렇게 말이 쉽노 니는"
"니가 이렇게 신경 쓴다고 밥 안 먹는 게 난 더 중요해. 화내지 말고 밖에 나갔다 오자 어?"
조용한 차 안에서 속삭여도 분명 들리고도 남을 텐데 형들은 아무 말도 없이 각자의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빨랑 먹어. 이거 다 먹어야지 뽀뽀해준다"
"뭐래 미쳤나?"
"그래 미쳤지 박지민한테"
숙소 앞에 내리자마자 남준이 형한테 가서는 데이트 좀 하고 오겠다며 형이 대답도 하기 전에 다시 내 손목을 붙잡고는 우리가 자주 오던 치킨집으로 왔다. 막무가내인건 알고 있지만 감당 못할 만큼 무대포인 태형일 말릴 수가 없었다.
"태형아 우리가 자꾸 이러면 형들 더 열 받아. 안 그래도 눈치 보이는데 니때문에 진짜 피가 마르는 기분이다"
"면역되게 계속 계속 사랑 표현하면 되지 뭐가 그렇게 무서워. 나중에 최종 보스몹은 엄마 아빤데 그땐 어쩌려고?"
"나는 진짜 우리 아니 형들이랑 정국이한테 피해간다면 나 못살아"
"니도 진짜. 내 앞에서 꼭 그렇게 까지 얘기해야 되나. 후...일단 먹어 먹고 얘기해"
잔뜩 서운한 표정으로 콜라를 들이키는 태형일 보다 답이 없는 상황에서 자기 딴에는 생각해준다고 밖에 나왔는데 너무했나 싶어서 부러 더 밝은 척을 하며 입안으로 치킨을 밀어 넣었다. 꽤 늦은 시간 이어서 사람들이 많지 않아 서로 먹여주고 웃고 떠들어도 눈치가 안보였다. 워낙에 동네 치킨집이었고 사장님도 친하다 보니 우리 두 사람이 유일하게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이었다.
야 떨어졌잖아, 내가 먹는다니까! 양념에 푹 찍어서 내미는 치킨을 받아먹으려다 손등에 떨어진 양념을 핥으며 타박을 했다. 으 끈적하게 물티슈를 찾으며 앞을 바라보니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태형이를 올려다봤다.
니 왜 그래 갑자기
빨리 나가자
아 싫어 치킨 먹었잖아!
나도 같이 먹었잖아 괜찮아
제발 태형아
그럼 숨 쉬지 말고 키스하자
야 이 미친!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데도 붙잡은 손목을 놓지 않고 연습실로 뛰어들어가는 태형이 때문에 불 꺼진 계단을 내려가면서 넘어질까 태형이 손을 고쳐 잡았다.
호석이 형을 볼 때마다 우울해하는 지민이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정국이더러 지민이 데리고 연습실 가서 지민이랑 연습 좀 하다오라고 보내고 나서 호석이 형과 마주했다. 둘만 있는 경우는 거의 손에 꼽을 정도였다. 형한테 이따 잠시 얘기 좀 하자며 용기 있게 말은 꺼냈지만 어떻게 사람 마음을 되돌리고 설득해야 하는지는 부족해서 조금 떨렸던 것도 같다. 지민이가 없는 걸 틈타 말을 하는 걸 눈치챈 건지 형도 덩달아 진지해졌다.
"형 미리 말 못 해서 미안해요. 근데 저희 한 번만 믿어 주시면 안 돼요? 형이 지민이 아끼는 만큼 저도 제 마음도 가볍지 않아요, 제가 지민이한테 상처도 많이 줬어요 저도 두려웠거든요 형 알잖아요? 저 부모님 말씀이면 꼼짝 못 하는 거 근데 엄마 아빠도 눈에 안보일만큼 박지민이 좋은데 어떡해요 저?"
나름 진지하게 생각해뒀던 말을 꺼내는데 얼마나 떨리던지 형이나 나나 이런 상황이 처음이나 다를 바 없었고 그런 형에게 내 마음을 표현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말을 꺼내고 보니까 느껴졌다. 지민인 얘기 잘 하던데...
공항에 도착할 때마다 느끼지만 마중 나와준 건 정말 고맙지만 몸을 겨누지 못할 만큼 빽빽한 인원에 따라붙는 카메라까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면 팔이며 몸에 새겨진 상처에 피 보기도 몇 번이고 반가움보단 두려움이 더 앞섰다. 해외 콘서트를 하면 더 빡빡한 일정에 컨디션은 엉망이고 비행시간에 지쳐 입국길이 편했던적이 없었던 것 같았는데 역시나 우려하던 일이 생겨버렸다.
이미 무너진 경호라인에 한 발짝 떼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미는 힘에 휘청이길 여러 번 멤버들 지민이를 신경 쓰지도 못할 만큼에 인파에 겨우 앞으로만 움직이며 준비된 벤으로 향하는데 귀가 찢어질듯한 소음에 뒤를 돌아봐도 얼른가라며 떠미는 매니저형들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진지도 모르고 차에 타기 바빴다.
"윤기 형이랑 지민이 형 안 탔죠?"
"응 애들 왜 이렇게 안 나오냐"
나머지 멤버들은 이미 다 차에 올라타서 대기하고 있는데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 지민이와 윤기 형 때문에 불안했다. 소란스러움과 함께 팬들에게 둘러싸여 나오는 두 사람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짙게 선팅 된 벤 때문에 밖이 뚜렷하게 잘 보이지 않아서 창에 달라붙었는데 경호하는 분에게 부축받아 나오는 지민이의 모습에 심장이 덜컹거렸다. 차 문이 열리니 밖이 더 소란스러워지며 지민이와 윤기 형이 떠밀리듯이 차에 올라탔다.
"너 왜 그래? 넘어졌어?"
"아...좀 밀렸어"
"밀렸는데 왜 다리를 저노? 봐봐"
"김태형 차 출발했잖아 앉아"
"형 지민이 넘어졌어요?"
두 사람이 벤에 타자마자 출발했고 뒷자석에 타고 있던 나는 앞에 앉은 지민일 보려고 일어서서 앞으로 넘어가다시피 하다 윤기 형에게 혼이 났다.
"다리 걷어봐 봐"
"형 이따가....이따가 해요..."
넘어진 게 분명한데... 윤기 형이 지민이 다리를 붙잡는걸 지민인 내쪽으로 눈치를 한번 보고는 괜찮다고 형한테 속닥거리며 몸을 돌렸다.
'넘어졌나?'
'답 안하나'
'박지민'
'진짜 괜찮아 태형아 걱정 안 해도 돼'
진짜 박지민! 왜 이렇게 서운하게 하는지
걱정할까 봐 그런 건 알지만 매번 이럴 때마다 서운했다. 내가 아프면 큰일이라도 난 것마냥 굴면서 지가 아픈건 절대 티 안내는걸 보면 강박증 일정도였다.
"아까 이제 공항에서 팬들이 너무 많다 보니까 상황이 좀 혹독해졌었는데 지민 씨가 넘어진 걸로 알고 있는데 어디 다치신덴 없는지?"
"아 전혀 다친데 없구요...
오히려 저 때문에 뒤에 같이 넘어진 팬분들 계셔가지구 혹시나 더 다치진 않으셨나 걱정이 돼서.."
고집스러운 박지민은 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까지 넘어진 곳을 내보이지 않았고 지민이의 고집에 나도 화가 나서 더 이상 대화를 안 하고 말았다. 인터뷰 내내 표정관리가 안돼서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나는 결국 남준이 형에게 인터뷰가 끝나고 불려 갔다.
"방송 장난이냐? 태형아 우리가 어디까지 참아줘야 해? 너 이렇게 공과사 구분 못하니까 호석이나 형들이 걱정인거야"
"죄송합니다"
"너만 지민이 신경 쓰이고 걱정되는 거 아냐 다들 걱정하고 있어! 근데 앞으로도 넌 이런 일 일어날 때 마다 일일이 표정관리 안되고 불편하게 할 거고 팀 따위 어떻게 되든 방탄 따위 안중에도 없는 너를 보고 그냥 너네 둘을 내가 어떻게 믿어야 되냐 어? "
인터뷰 후에 바로 리허설을 하느라 공연장으로 이동하면서도 지민이 곁으로는 가지도 않으니 정국이가 안달이 나서 지민이 옆에서 이것저것 챙겨줘서 그나마도 신경이 덜 쓰였다. 속에선 짜증이 솟구치고 걱정이 돼서 자꾸만 시선이 가려고 했지만, 하지만 박지민 저 버릇을 좀 고쳐놔야 했다.
저녁까지 이어지는 일정에 힘들게 분명한데도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아무 말도 안 하고 생글생글 웃는 지민일 보니 속에서 뭔가가 자꾸 울컥 치밀어 올랐다.
하루가 너무 길었다.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져있다가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간신히 샤워를 하고 다시 침대 위로 엎어졌을 때 욱신거림이 올라왔다. 공항에서 사람들이랑 휩쓸려 넘어졌을때 무릎을 찧어서 하루 종일 시큰거렸다. 가운 아래로 드러난 무릎을 보니 괜히 서러웠다. 아까는 정신도 없고 또 다들 걱정할까 싶어서 멀쩡 한척했지만 아프면 서럽다고 낮부터 표정이 무섭게 굳어선 인상을 쓰던 태형일 생각하니 너무 서러웠다. 괜찮다고 내가 밀어냈지만 또 신경도 안 써주는 태형일 보니 서운했다. 계속 형들 눈치 때문에 치대 오는 태형일 밀어내는 것도 힘들었다. 아프고 서럽다고 태형이한테 어리광 부리고 싶어도 다독거려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오버하면서 보란 듯이 부둥부둥 해줄 김태형을 아니까 나라도 자제를 해야 했다. 공연에 지장이 갈 만큼 다친 것도 아니지만 포커스가 자꾸 나에게 맞춰지다 보면 공연에까지 영향이 갈까 봐서 더 괜찮은 척을 한 것도 있다.
멍하니 천장을 보며 도배 무늬를 세며 태형이에게 문자를 할까 말까로 점치고 있을 때였다. 딩동
태형인 줄 알고 장난칠까 잠시 망설이다 또 그랬다간 완전 화를 낼 거 같아서 얼른 문을 열어젖혔다.
".... 뭐 좀 발랐냐?"
"형...."
예상치 못한 호석이 형 등장에 놀라움과 반가운 동시에 얼떨떨했다. 쑥스러운 듯 방에 들어서는 호석이 형이 낯설어서 나도 덩달아서 머뭇거렸다.
"미련 퉁아 그래 갖고 춤은 어째 췄냐?"
"진짜 괜찮아요 형"
앉을 때가 마땅치 않으니 침대 위에 앉았고 가운이 밀려올라가 드러난 무릎에 잠시 시선이 멈춘 형은 뭔가 울컥한 것 같았다. 그러더니 손에 쥐고 있던 뭉치를 침대 위에 올려두더니 몸을 일으켰다.
"형 이게.."
"나 안무 과장 없으면 안 돼. 진짜 태형이 때문에 징글징글해서라도 오래 가라"
뿌리는 파스 붙이는 파스 호랑이연고 아대까지
형도 내가 계속 신경이 쓰였던지 약을 있는 대로 챙겨
와서 던져주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항상 마음 약하고 정 많은 호석이 형이었다. 먼저 손 내밀어준 형이 고마웠다. 내리사랑이라고 내가 정국이한테 애정을 쏟듯 초반에 팀에 적응 못하고 힘들어할 때 형이 준 애정을 보면 형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고 있었지만 계속 내가 우리가 마음에 걸렸을 형 때문에 그동안에 속앓이 했던 게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고마워요 형.
귓바퀴가 빨개져선 허둥지둥하더니 푹 쉬라고 하며 사라지는 형의 뒷모습을 보니 푹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항상 공연이 끝나고 나면 그 흥분감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귓가에 맴도는 함성소리와 음악소리 때문에 몸이 힘들어도 콘서트가 끝난 밤엔 잠이 안 왔다. 핸드폰도 조용하고 태형인 단단히 화가 난 건지 꼭 필요한 말만 하고는 하루 종일 싸했다. 호석이 형과 사이가 풀어지니 태형이가 문제였다.
'누구세요'
문 사이로 들려오는 태형이 목소리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입가를 실룩거리며 문 앞에 가만히 서있으니 가까워지는 슬리퍼 소리에 조금 긴장이 됐다. 문이 벌컥 열렸다.
"태형아"
"웬일이세요?"
"화 안풀렸어? 나 다시 갈까?"
"진짜! 넌"
결국엔 이럴 거면서. 다시 가려는 제스처에 눈을 치켜뜨더니 어깨를 붙잡고 껴안아 오는걸 허리를 감싸 마주 안아주자마자 또 김태형답게 징징거리며 매달려왔다.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응 니가 잘못했다 이번엔. 진짜 박고집 니 땜에 몬살겠다"
"그래서 나 싫어?"
품에서 벗어나 태형일 올려다보며 씩 웃어주자 한숨을 내쉬며 망개떡이 요망해졌다면서 입술을 가볍게 쪽쪽 대면서 허벅지를 끌어안고 달랑 들어 올리길래 냉큼 허리에 다리를 감았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이 정도 어리광은 애교였다.
"니 없으니까 잠이 안 와. 그러니까 오늘 같이 자자"
'Long > 화양연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뷔민]화양연화_24 (5) | 2017.07.15 |
---|---|
[뷔민]화양연화_23 (3) | 2017.07.11 |
[뷔민]화양연화_20 (6) | 2017.06.14 |
[뷔민]화양연화_18 (4) | 2017.06.09 |
[뷔민]화양연화_16 (6) | 2017.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