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민] 화양연화_01
"어.. 저희를 이끌어 가주시는 방시혁 pd님과 항상 뒤에서 같이 고생해주시는 매니저형들 감사드리고요 그리고 이 상을 만들어 주신 아미들 사랑합니다. 더 들뜨지 않고 겸손하게 음악 하는 방탄소년단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미아미아미 사랑해요"
"네,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앵콜곡 준비해주세요."
여전히 떨리는지 얼떨떨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감사한 분들을 차례차례 호명하며 차분하게 수상소감을 이어가는 남준이 형과 기쁨을 숨길 수 없어서 몸을 들썩들썩 거리는 멤버들
그 곁에선 너와 나의 찰나의 마주침
익숙하게 눈을 맞추고 웃어주는 너의 개구진 미소에 또 가슴이 울렁거렸다.
주변의 소음과 시선 따위 의식하지 않고 다가가고 싶은 내 마음이 무서워져 먼저 시선을 돌리자 엠씨들에게 살갑게 인사하는 너를
전 출연자들 때문에 정신없는 무대 위에서도 너만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은 환상을 본 게 언제 부터일까
혹여나 내 마음이 내 시선이 흘러넘쳐 너에게 닿을까 두려워
그럼에도 내 시선의 끝은 항상 너에게 닿아있어.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기다리고 있던 스텝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대기실로 돌아온 우리는 거친 숨소리와 땀범벅이 돼서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하나 둘 소파에 쓰러졌다. 기분이 업된 상태로 앵콜무대에 체력을 다 쏟아버리고 내려오다 보니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피로가 몰려왔다. 오직 김태형만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 핸드폰을 들고 대기실을 벗어났다.
"아~저 새끼는 체력도 좋아"
"냅둬 한창 불 타오를 때잖아"
퐈이어-거리며 추임새를 넣는 남준이 형과 호석 이형이 김태형을 욕하며 궁시렁대는 걸 들으며 내 손안에 놓인 애꿎은 트로피만 만지막 거렸다. 마치 무대 위에서 즐겁게 노래하고 춤춘 게 환상이었던 것처럼 허무해지며 마음이 공허해져서 미칠 듯이 외로워졌다. 이제는 적응이 될 때도 됐건만 연애 중인 김태형을 지켜보는 것은 아직도 신경 쓰였다.
"휴...."
엇, 한숨소리가 너무 컸나 정국이가 쓱 쳐다보는걸 어색하게 웃으며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김태형은 다시 대기실로 돌아와 남준이 형과 석진이 형에게 애교를 부리면서 '1시간만 나갔다 온다며' 온갖 아양을 떨다 간신히 허락을 받았고 탁자 위에 있던 볼캡을 눌러쓰며 소파에 멀거니 기대 있는 나에게 '나 잠깐 얼굴만 보고 올게- 먼저 가 있어! ' 라며 굳이 지 쪽으로 쳐다보지도 않는 내 앞에 와서 눈을 맞추며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겉옷을 챙겨 입고 뛰쳐나갔다.
김태형은 쓸데없이 다정하다.
미스에이 이수지, 러블리 걸즈 김주영, 여자 친구 유 정, 트와이스 박주애, 그리고 윤지수까지
김 스치면 인연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도록 랜선 연애와 길게는 6개월 팬들 모르게 만나는 김태형의 옆자리를 거치고 여자 친구들
처음엔 사교성이 좋고 낯가리지 않는 그런 부분이 좋았다. 멤버들 대부분 지방에서 상경해 의지할 곳 이라곤 우리들 뿐이던 세상에서 어느샌가 태형이 그 틀을 깨고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돌은 술, 담배, 연애는 무조건 3대 금지 조항이라고 대부분 알고 있지만 사실 금지 조항에 들어가지 않는 부분이다. 워낙에 쿨하신 pd님과 이사님들 덕분에 멤버들 모두 자유로운 연애 생활을 즐기고 있다. 음악의 영감은 사랑이라는 회사의 모토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꿈을 이루기 위해 모였었고 혼자가 아닌 방탄이라는 작은 세계 속에 있기 때문에 첫째도 둘째도 팀워크가 우선이었다.
그런데도 워낙에 천성이 낙천적이고 여린 김태형만을 형들과 정국이는 이해해주고 눈감아줬다. 개성 강한 일곱 명이 모여서 팀을 이루고 가수가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다 보니 웬만한 일은 넘어가기도 했고
"근데 행님, 전체 회식인데 빠져도 돼요?"
"갑자기 잡힌 거니까"
소파에 널브러져서 핸드폰을 하던 정국이 갑자기 태형이를 걸고넘어지면서 무대에서 방방 뛰며 열정적으로 뛰어다닐 때는 언제고 남준형 어깨에 기대면서 배가 아프니 열이 나는 것 같다며 가증스럽게 연기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준이형은 녹화영상을 모니터링하기 바빴다.
"지민이 형 저 열나는 거 같죠? 저 열나죠?"
"우리 정국이 형님이 약손 해줄게 일루와 봐"
평소에는 옆에만 가도 툴툴 거리 기면서 피하기 일쑤 더니 남준 형의 치켜 올라간 눈썹에 금세 꼬리를 내리면서 구석에 있는 나에게 다가와 치대는 정국이 때문에 기분이 나아졌다.
여우 같은 놈. 형들이나 나나 기분이 안 좋다 싶으면 귀신같이 알고는 비위 맞춰주는 정국이를 보면서도 절대 멤버들을 반하지 않겠다고 몇 번씩이나 다짐을 해봐도 감정의 홍수에 점점 지쳐가는 건 사실이었다.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태형이는 외로운 걸 견디지 못했다. 불완전한 연습생 시절을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함께한 우리이지만 태형의 옆을 지켜주는 것은 그녀들이었다. 다정한 김태형은 여자 친구들에게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녀들은 처음에 그런 다정한 태형에게 빠져 행복해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정한 태형을 당연하게 여겼고 정작 태형이 힘들어하거나 우울해하는걸 못 견뎌했다. 바빠지는 스케줄과 비례하게 점점 개인적인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아이돌의 특성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친구도 많았다.
그런 태형은 매번 지쳐 힘들어했고 이기적 이게도 나는 그런 태형의 옆을 차지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지친 태형이 제자리로 돌아와야 내 우울이 끝날 텐데...
아... 지루해
술 마시고 확 취해버리고 싶네
예정에도 없던 회식을 주최한 한참이나 대선배격인 그는 오늘의 주인공이 본인인 것처럼 목소리를 높여가며 회식의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했다.
후보에 같이 올랐었고 활동기간이 겹쳐 자주 마주치다 보니 영광스럽게도 그는 특별하게 우리 멤버들에게 애정이 많았다.
술이 한두 잔씩 들어가다 보니 여기저기 목소리가 커지고 시끄러워지는 게 얼어있던 분위기가 많이 풀어진 것 같았다.
아까부터 계속 내 기분이 저조한걸 눈치챈 형들은 눈에 띄어서 괜히 분위기 망치지 말고 컨디션이 안 좋아서 구석에 앉아있게 해뒀다며 배려를 해줬다.
정국이와 호석 이형이 나서서 선배 가수들 앞에서 분위기를 띄우려 고군분투를 하는 모습에 또 마음이 무거워졌다.
"짜증나"
한시간만 있다가 온 다는 김태형의 약속을 신경 쓰고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태형이 늦는다는 연락도 없었고 또 왜 늦어지냐고 묻는 멤버들이 없기 때문에 궁금하고 답답한 건 오로지 내 몫이었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한 손에 꾹 쥐고 불판 위에 다 식어서 마른 고기를 젓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바짝 말라 쪼그라든 고기가 내 마음 같아서 슬펐다.
언젠가 밖에 있는 김태형에게 언제 오냐면서 왜 안 오냐고 늦어지는 김태형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문자와 전화를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방송에서 지나가는 말투로 자신에게 왜 이렇게 집착하냐면서 말하는 태형의 한마디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태형은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었지만 그 후로
전화 한통 문자 하나도 가볍게 보낼 수 없는 겁쟁이인 내가 너무 싫었다.
"미자야?"
바로 귓가에 들리는 낮은 목소리에 놀라 정신이 번쩍 들어 고개를 들었다.
최현이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자동반사로 일어나서 허리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숙인허리 아래로 반짝반짝 윤이나는 그의 비싸 보이는 운동화가 여기 고깃집과는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내 인사 소리가 제법 컸는데도 삼삼오오 섞여 들다 보니 아무도 우리 쪽으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전혀 이 자리와 어울리지 않은 그의 방문과 안부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멤버들 모두 동경하고 롤모델 삼는 그룹의 리더인
최현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지금 그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룹 -의 래퍼이자 20대 핫한 배우
가수로썬 이미 최정상을 주가 했고 첫 영화를 찍은 그 해에 신인남우상까지 받은 그가 삐딱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자냐고"
"아...아뇨"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에 까만 볼캡을 눌러쓴 그의 기에 눌려 더듬거리는 날보더니 자연스레 내 옆자리에 앉았고 술병을 드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당황한 내 얼굴이 재밌는지 눈썹을 까닥거렸다.
뭐지 이 위험한 분위기는...
"21살입니다. 선배님"
발끝에 힘주고 정중하게 대답하자
"음.. 그럼 막내?"
"아니요, 막내는 저기 선배님 옆에 있는 친구입니다"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그가 내 팔을 잡고 확 끌어당겼다. 억-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놀라 움찔거린 게 쪽팔렸다.
"나 누가 내려다보는거 안 좋아해"
"아.. 네네 죄송합니다"
"1위 했다면서 노래 좋더라"
"어...감사합니다"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 그의 축하인사에도 고개를 꾸벅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나를 한번 쓱 쳐다보고는 술잔에 술을 콸콸 쏟아붓는 최현의 모습에 속으로는 설마설마하며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 술은...."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운운하며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최현 때문에 잔뜩 쪼그라든 내 어깨는 점점 굽어 들어갔다.
"내일 스케줄 있어?"
"네....."
"몇개?”
“어..음 세개였던거 같습니다”
“나때는 하루에 열개씩 뛰었어, 왜 웃어 꼰대 같애?”
눈치를 보며 대답하던 나는 그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뭔가 엄청 어렵고 불편했는데 그의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전환됐다. 그 뒤로 그가 질문하면 나는 답하고 술잔 비우기 무섭게 채워주는 속도에 정신이 없었다.
긴장 속에서 술을 마셔서 그런지 정신은 말짱했지만 연거푸 들이킨 술에 얼굴에 취기가 살짝 오르는 것 같았다. 사실 소문과 다른 최현의 모습에 마음이 살짝 풀어진 것도 있었지만
아...심각하게 잘생겼어
"알아, 나 잘생긴 거"
속으로 한 말이 밖으로 새어나갔나 보다.
뻔뻔한 얼굴로 테이블에 한쪽 팔을 기댄 채 나를 보고 있는 그의 잘난 얼굴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뭔가 엄청난 빽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소심하고 낯가림 심해 사람 사귀는 것도 쉽지 않아 항상 멤버들 밖에 모르던 내가 모두가 동경하는 그와 친목을 다지고 있다는 거에 기분이 한껏 상기된 상태였다.
선이 굵은 외모 때문에 차갑고 냉정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 그가 후배에게 먼저 스스럼없이 다가와 대화를 이끌어나가며 분위기를 맞춰주는 것에 속으로 너무 놀랐지만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다정하게 조언을 해주는 그가 너무 신선했다. 살벌하고 냉정한 연예계 현실 속에 갑자기 다가온 인연에 날 선 경계보단 신뢰 쪽으로 기우는 게 사람 마음이었다.
내 협소한 인간관계의 카테고리에서 적어도 그는 좋은 사람으로 분류될 것 같았다.
"근데 혼자 왜 이러고 있어?"
"아..... 컨디션이 별로..."
잊고 있던 태형이 생각났다.
한 껏 상기됐던 기분이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소름이 끼쳤다. 태형일 잊고 있었다니...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깜짝 놀라 최현을 바라보자 볼에 닿은 그의 손길 때문에 분위기가 묘해졌다.
"열은 없네"
"아... 저 괜찮아요"
"응 그것도 알아, 말랑말랑해 보여서 "
민망해하는 내 볼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꼬집는 그의 손길에 볼을 내어준 채로 어색하게 웃었다. 독특하고 자신감을 너머 오만하기까지 한 그가 불쾌할 만도 한데 이상하게 밉지가 않았다.
그가 주는 관심이 싫지 않아서인지 아님 슬슬 오르는 술기운 때문인 건지 헷갈렸다.
"지민아.”
볼을 내준 채로 서로 대치중인 상황에 기다리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으... 태태에"
고개를 빼지는 못하고 눈만 돌려서 뭉개지는 발음으로 태형이를 부르자 가까이 다가오는 태형을 보며 그가 천천히 손을 내렸다.
"어?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나와 같이 있던 사람이 최현인 것에 놀란 태형은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눈을 반짝거리며 최현을 바라보는 태형도 나와 같은 동경이 가득한 눈빛으로 흡사 소녀팬과도 같은 모습을 보이며 그를 바라봤다.
"선배님, 전 뷔입니다! 브이"
"반가워"
특유의 개구쟁이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흔드는 태형의 모습은 무뚝뚝한 나와 달리 사람 좋아하고 특유의 밝은 모습으로 그만의 분위기로 바꿔놓았다.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태형이의 미소에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나왔다.
"나 이제 재성이 형한테 가봐야겠다. 담에 또 보자 지민아"
다정하게 나에게 인사를 건네고 내 볼을 한번 툭치고는 자리에 일어서는 그가 아쉬웠다.
감정과 이성사이에 힘든 요즘에 새로이 만난 그에게 잠시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다.
그를 따라 일어서 태형과 함께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를 했다. 미묘하게 태형에게는 선을 긋는 태도가 조금 의아했지만 멀어지는 그를 보며 태형이 호들갑을 떨며 자리에 앉아선 최현이 여기 왜 있냐며-뭔 얘기를 했냐며 정신없게 해서 방금까지 최현의 태도가 다르단 걸 인식하지 못했다.
"재성 선배님이랑 연락하다가 근처라서 인사차 들리셨대"
"아 그래? 진짜 까리하시다 그렇지? 실물 쩐다"
"응, 내 아까 쫄았다니까 무서워서 근데 생각보다 다정하시더라"
"야 니 술 마셨어?"
뭔가 긴장감이 풀려서 그런지 몸이 노곤한 게 티가 났는지 태형이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킁킁거렸다. 인상을 팍 쓰면서 얼굴을 감싸는 김태형 때문에 심장이 쿵쿵거렸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봐
"아, 왜이카노"
"씁! 많이 마셨구먼 야, 엉아 없을 때 술 마시지 말라했지?"
생일도 나보다 늦은 게 곧 잘 형행세를 하는 김태형이 어이가 없어서 벗어나려고 고개를 흔들며 비틀었지만 오히려 내 얼굴을 더 꽉 붙잡고 좌우로 흔드는 김태형 때문에 오롯이 나에게 쏟아지는 그의 관심을 잡아둘 수 있어서 바닥을 쳤던 기분이 점점 나아졌다.
한참을 잔소리를 늘어놓는 김태형에게 영혼 없이 대꾸를 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우리에게 꽂힌 서늘한 시선에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 정확하게 나와 눈이 마주친 그 때문에 심장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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