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민]화양연화_06
괜찮은 척 아프지 않은 척하는 건 제일 자신이 있는데 한 번 무너진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연락 오는 그의 태도에 매일이 악몽 같은 하루였고 계속 신경이 날이 서있는 상태였다. 눈만 마주치면 무슨 일 있냐면서 걱정스레 물어오는 태형이에게 니때문이라고 장난스레 받아치며 말을 돌리는 나에게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냐면서 미안하다는 태형이 때문에도 더 힘이 들었다.
눈을 감았다 뜬것 같았는데....
어떻게 떨어졌지는도 모를 만큼 찰나였다.
웅웅 거리는 소리와 함께 달려오는 태형의 모습이 보이니 안심이 됐다. 어지간히 놀랬나 보네. 아육대에서 저렇게 뛰었음 금메달 땄겠는데... 미련스럽게 숨 쉬는 것도 잊을 만큼 복잡한 머릿속에 말도 안 되게 무대에서 떨어진 나는 이 순간조차도 일 번이 김태형이어서 미련스러웠다.
태형이 등에 업혀서 대기실로 들어오니 아픔이 밀려왔다.
"지민아- 내 봐봐 이거 몇 개고?"
"망개?"
소파에 누운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선 손가락을 흔드는 태형이 때문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어떡해 지민이 많이 다쳤나 봐 형! 뭐해요 빨리 병원 가요 누워있는 내 팔을 끌어당겨 병원 가자며 부산을 떨어대는 태형의 등짝을 때리며 정신없으니까 저리로 가라는 세진이 형의 타박에도 좁은 소파에 엉덩이를 들이밀며 옆에서 떨어지지 않는 태형이 때문에 매니저형들이 얼른 무대로 나가라며 떼어놓기 바빴다.
한사코 괜찮다는 내 말에도 매니저형들은 그러다 큰일 나면 팬들, 태형이 등쌀에 우리 죽는다며 병원 가서 검사만이라도 하자며 설득하는 형들 때문에 짐을 챙겨서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가벼운 타박상에 혈압이 일시적으로 떨어져서 그런 거라며 안정을 취하면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도 불안한지 세진이 형은 입원은 안 해도 되냐며 통역 담당자인 히로키에게 재차 물으며 확답을 받았고 빨리 회복되게 링거는 맞고 가자는 형 때문에 병원에서 오랜만에 숙면을 했다.
"형-몇 시예요? 나 깨우지"
"9시 좀 넘었어. 잠 못 잤어? 너 완전 다시 기절한 줄 알았다"
"하암-푹 자고 일어나니까 개운해요"
"지민아, 너 아까 자는 동안 계속 전화 오더라"
"누가요? 팬미팅은 끝났죠?"
건네받은 핸드폰에 남겨진 부재중 6통에 2통은 그의 것이었고 4통은 태형이에게서 온 것이었다.
"나도 깜박 잠들었었는데 태형이 때문에 깼다. 뭔 전화를 그렇게 하는지 아까 내가 받았어"
"아...걱정됐나 봐요"
"그 C는 누구야. 너 여자 친구 생겼니?"
잦은 통화와 연락에 그의 이름을 저장해 둘 수도 없었다. 혹여나 태형이가 핸드폰으로 게임이라도 하다 연락이 올까 봐.
"아니에요. 그냥 친구에요"
호텔로 돌아오면서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형에게 정말 맹세코 아니라며 혹여나 멤버들한테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며 단단히 일러뒀다.
"애들은 밥 먹고 있나 봐- 너도 뭐 좀 먹어야 되지 않아? 뭐사갈까?"
"자고 일어나서 생각이 없어요. 그냥 가서 바로 쉴래요"
각자 방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는 멤버들에게 걱정 할테니 매니저형에게 이따가 연락을 하라고 전하며 조용히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앞으로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걱정을 하며 있었다. 며칠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휘몰아쳐서 몸이 견디질 못한 거 같았다. 자꾸만 이러면 눈치 빠른 형들이 알아차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잃을 게 없다는 그는 자신만만해했다. 형도 공인이면서 뭐가 그리 당당하냐면서 맞받아쳤지만 말하지않았냐며 난 잃을게 없다니까 그래서 기사 따위 나도 전혀 두렵지 않다는 그의 당당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아서 잃을게 많은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절망적이었다.
탁자위에 올려둔 핸드폰에서 울리는 진동에 몸을 일으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였다
'네...여보세요'
'몸은?'
'괜찮아요...'
'하아...어느 호텔이야?'
'..........'
'주소 찍어서 보내'
전화가 울려서 웅성거리는 줄 알았는데 다짜고짜 주소를 보내라는 그의 말에 설마 설마 했다. 일본인 건가.
벌써 한국으로 기사가 나진 않았을 텐데 어떻게 알고 연락을 했는지 전화를 받자마자 몸상태부터 체크하는 그 때문에 소름이 끼쳤다. 한때 그가 주는 관심이 싫지 않아서 잠시 흔들렸던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잠깐이나마 태형이와 그가 비슷한 것 같은 착각을 받아서 그에게서 태형이를 느끼려 했던 나를 비웃듯이 그는 태형이가 아니었다.
어른인 그에게 느꼈던 감정은 동경과도 가까운 것이었지 사랑의 감정은 아니었기 때문에 떨림과 설렘이 아주 큰 착각이었단 걸 뒤늦게 깨달은 나의 모든 잘못이었다.
딩동-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코앞까지 들이닥친 그를. 도피처와 같은 해외 스케줄에 숨통이 틔이는 것 같았는데, 막무가내로 나오는 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아 새워서 미안하지만 자기는 멈출생각 없다면서 날 더러 포기하라고 했다.
혹시라도 누군가와 마주치면 어쩌지, 초조하게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거렸다. 너무 신경이 쓰여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어쩌지.....어떡하지...
쾅쾅-
지민아-
태형이? 문을 두드리며 나를 부르는 목소리는 태형이었다. 아, 그제야 내가 방호수까지는 그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아고. 깜짝이야! "
"미안. 놀랬나"
"아니. 몸은 괜찮나?"
방 안으로 들어서는 태형이의 품에 한가득 안고 들어오는 것들에 뭐냐고 물으니 배고플거같아서 죽 시켜 왔다는 태형이의 한마디에 바보같이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아-태형아. 너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며 어지럽냐 병원에선 뭐라고 했냐면서 정신없이 물어오는 태형이는 테이블 위에 가져온 것들을 펼쳐 놓으면서도 걱정이 한가득이어서
나는 세진이형 에게 물어봐도 된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괜찮다며 웃으면서 얼른 의자에 앉았다.
"배고팠는데 고마워-태태"
"내 밖에 없제? 세상에 이런 친구가 어딨노"
쑥스러워하면서 또 개구지게 웃는 태형이 때문에 며칠간의 괴로움이 또 참을만했다.
"진짜 아까 나는 니 부끄러워서 안 올라오는 줄 알고 형들이랑 막 막 장난치고 있었다니까"
침대에 반쯤 기대선 죽을 떠먹고 있는 내게 팬미팅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던 태형이와 웃고 떠든다고 또 금방 그에 대해 잊었다. 니 그렇게 가고 난리 나서 팬들이랑 형들 다 멘붕 와서 헛소리하고 윤기형은 심지어 눈물 고였다니까. 에이 거짓말. 내가 심리적으로 불안하단 걸 아는 건지 옆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는 태형이 때문에 솔직히 놀란 마음이 많이 진정이 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에 당황하기도 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우릴 위해서 할애한 그 시간을 망쳤다는 자책감도 들었고 순간이었지만 기억을 잃을 정도의 사고는 처음이어서 또 혼자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힘들었다.
딩동-
"누구지? 정국인가?"
벨소리에 침대에 엎드려있던 태형이가 몸을 일으켰다. 먹다 말고 숟가락을 놓고 내가 벌떡 일어나자 어깨를 툭치며 자기가 나가보겠다는 태형이의 팔을 붙잡았다. 아니-내가 나갈게. 얼굴이 하얗게 질린 나는 고개를 저으며 태형이의 팔을 붙잡고 늘어지며 내방이니까 내가 나가야 한다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으며 태형일 다시 침대로 밀어 넣었고 눈 앞에 보이는 과일들을 가리키며 저거 다 먹고 싶으니까 깎아놓으라면서 누가 들어도 이상한 헛소리를 늘어놓고 재빨리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안녕.
편안한 차림에 볼캡을 눌러쓰고 서있던 그는 나를 보자마자 이마에 먼저 시선을 돌렸다. 상처 났네.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뻗어왔다. 별거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그의 손을 쳐내며 대꾸해버렸다.
"너 만나러 여기까지 왔는데 차 한잔도 안 줘?"
"아..방이 너무 지저분해서요"
"후우- 지민아....아니다 그러고 나갈 거야?"
옷은 그렇다 치고 모자도 없고 호텔 슬리퍼 차림에 밖으로 나갈 순 없어서 그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조마조마하긴 했지만 그렇게 까지 태형이에게 일러뒀는데 굳이 또 나올 거라고 생각을 안 했는데 등 뒤로 느껴지는 기척에 등골이 서늘했다. 제발 태형아 열지 마.
그새를 못 참고 밖으로 나온 태형이와 마주친 그의 눈치를 보니 이미 표정이 싸늘한 게 불안했다.
"어?!..선배...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안녕. 같이 있었네. 지민이 병문안 왔어"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이 싹 바뀐 그는 태형이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 내가 제일 두려워하고 우려하던 상황이 일어나버려서 그대로 얼어버린 나를 돌려세우더니 어깨를 감싸 안아왔다.
"네?"
"아- 지민이가 얘기 안 했어? 우리..."
"형!"
나를 보면서 씩 웃는 그 모습에 머리가 핑 돌았다.
눈 앞이 아찔한 게 다시 숨이 막혀오는 것 같아서
그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속으로 제발-제발을 외쳤다.
불안함에 입술을 깨물며 그를 올려다봤다.
".......우리 여기 15층에 있어서 잠깐 보러 왔어"
화보 촬영 왔거든. 태형일 바라보면서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거짓말을 하는 그 때문에 피가 마를 것 같아 두 사람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던 나는 결국 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태형아, 나 잠깐만 나갔다 올게"
셋이 같이 있는 상황은 끔찍해서 그냥 그와 나가는 게 가장 나을 듯해서 아무렇지 않게 태형이에게 말했지만
"밥 먹다가 어딜 간다고- 그냥 방에서 얘기해"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 팔을 붙잡아오는 태형이의 표정이 낯설었다. 한 번도 저렇게 남들 앞에서 정색한 적 없었다. 그는 굉장히 이 상황이 흥미롭다는 듯이 태형일 바라보고 있었고 난처해진 나를 보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궁금해하고 있을터 였다.
"너 왜 그래? 일부러 여기까지 오셨는데 방에 뭐..."
"아, 그러니까! 선배님, 죄송한데 아직 지민이 움직일 만큼 안 괜찮아서요. 그냥 방으로 들어오시죠"
"태형아!"
태형이의 반응에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저러는... 무례하다 싶을 만큼 건방진 태형의 태도에 여유롭던 그의 표정도 점점 굳어갔다. 둘의 대치 상황에 정말 등이 터질 것만 같았다.
"맞는 말 이긴 한데 대게 따갑게 얘기하네. 후배님."
"언짢으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니. 재밌네"
점점 하얗게 질려가는 나때문인지 그가 뒤로 물러서줬다. 금새 여유를 찾은 그는 태형이에게 용기가 대단하다며 웃어넘겼다.
"어쨌든 놀랐을 텐데 푹 쉬어."
"네. 형"
"근데 오늘 일 나 사과 안 한다. 너 거짓말 못한다고 했잖아"
태형이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현기증이 나서 눈앞이 핑 돌았다.
"너 왜 그랬어. 태형아"
방안이 과일 껍질로 난리가 났다.
바닥에 떨어진 과일 껍질을 주우며 뭘 말하냐면서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태형이 때문에 가슴이 답답했다.
평소에 김태형 답지 않은 모습에 혼란스러워서
"넌 표정이 왜 그랬는데 그럼"
"무슨 말이야?"
"하..꼭 울 것..아니 왜 안절부절못하고 비 맞은 강아지마냥"
태형이 두서없이 내뱉는 말에 대꾸도 않고 있으니 아-그냥 좀 열 받았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본인도 모르겠다며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려서 더 이상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아직 이른 새벽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새벽 공기도 마시고 산책로도 한 바퀴 돌았다. 자유롭고 여유로운 사회인처럼 보일까 싶어 느긋하게 풍광도 즐겼지만 사실은 너무 피곤한 아침이었다. 자고 있는 지민이 깰까 봐 조심조심 나온다고 진이 다 빠졌다. 한번 자면 업어가도 모르지만 예민할 때는 숨 쉬는 소리에도 뒤척이며 깨버려서 침대에서 문까지 조금 오버해서 기어 나왔다. 어젯밤에 그 난리를 피우고 나니 죽이 넘어가지 않는 게 당연했다. 입맛이 없으니 단 게 땡길까 싶어 편의점에서 뭐라도 사다먹여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눈을 뜨자마자 밖으로 나온 길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멍하니 서있는데
"태형아! 벌써 일어났어?"
뒤에서 등을 툭 쳐오는 손길에 무방비하게 있다 자빠질뻔했다. 세진이 형. 뒤를 돌아보니 매니저형도 일찍 일어난 건지 운동복 차림이었다. 이 새벽에 뭐하냐면서 물어오는 형에게 내가 지민일 위해서 이 정도까지 의리가 있는 남자 임을 강조하며 미담 같은 건 퍼뜨려도 좋다며 대놓고 자랑을 하니 천지가 개벽할만한 일이라며 껄껄대는 형에게 칭찬을 받았다.
"참, 세진이 형. 빅힛선배님들도 이 호텔 묵었다면서요. 왜 말 안 했어요?!"
"어? 뭔 소리야"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나란히 올라탔다.
10층. 11층
한적한 엘리베이터는 빠르게 움직였다.
"어제 최현 선배님이 지민이 병문안 왔었는데 여기 15층에 묵으셨다던데 어제 저 만났잖아요."
"빅힛에 최현?"
"네. 화보 때문에 일본 온 거라고 하던데요"
"글쎄. 난 못 들었는데"
띵-
"빨리 가서 좀 더자. 2시간 뒤에 깨우러 갈게"
"알겠어요"
10층에 세진이 형이 먼저 내렸고 우리들 방은 한층 위인 11층이었다. 내릴 준비를 하다 고개를 돌리니 층수
가 눈에 들어왔다. 어제 분명 15층이라고.....
우리 방이 분명 11층에 있는데 11이라는 숫자 위로 2칸이 끝이었다. 제일 위층이 13층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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