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민]화양연화_39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선명하게 그려지는 그날의 태형이 얼굴이 계속 맴돌아서 잠을 자지도 못했고 한 공간에 있을 때는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매일 마주하는 얼굴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 서로에게 멀어지는 일이란 정말 할 짓이 못됐다. 나만 독하게 마음먹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형인 평소와 같이 행동했고 이상해 진건 나뿐이었다.
“태형아.”
“콜라 마실래?”
“......”
“영화 볼까?”
미국 공연은 무사히 마무리가 됐고 가슴 졸이던 멤버들 회사 사람들 모두 지민이 너한테 너무 관심이 많아서 그런 거라며 인기쟁이라며 우스갯소리를 늘어놓았지만 개인 무대를 하기 위해서 무대에 오르고 암전이 됐을 때는 서있기도 힘들 만큼 몸이 덜덜 떨려왔었다. 함성소리도 이명처럼 들릴만큼 신경이 예민할 때 댄서형들이 걱정 말라며 투박하게 위로를 해와서 그나마 시작은 할 수 있었다.
“김태형.”
“아님 밖에 나갈래?”
“그만하라고.”
“뭘? 게임? 알았어 안 할게. 그럼 잘래?”
자꾸만 박자가 빨라졌다. 눈을 가린 안무에 신경이 곤두서있는 게 느껴질 만큼 한껏 예민해져 있었다. 흥분감에 심장이 쿵쿵거렸고 인이어를 타고 흐르는 함성소리는 귀를 찢을 듯했다. 무대고 뭐고 방 안에 틀어박혀 숨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죽일 거라고 꼴 보기 싫은 널 죽여버릴 거라며 속삭이는 목소리가 함성소리를 뚫고 귓가를 맴돌았다.
“아직도 기분 안 좋아?”
“태형아 그만하자.”
안대를 벗고 찰나에 고개를 돌린 순간 무대 한편에 가만히 서있던 태형이때문에 더 놀라서 두려움도 잊었다. 밀어내고 피하는 나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무렇지 않아 하는 태형이와 매 순간이 갈등이었다. 처음엔 피하기만 하는 나를 가만히 두고 지켜봐 줬다. 예민하고 화가 난 내가 시간이 지나 스스로 풀릴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는 듯했다. 부정하고 나쁜 말을 내뱉는 내가 단순히 화가 나서 짜증 나서 한순간 변덕쯤으로 여겼다.
“뭘 그만해?”
“다 알면서 모른 척 좀 그만해.”
“내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그냥 우린 처음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었다.”
“힘들 거란 거 쉽지 않을 거란 거 알고 있었잖아 왜 이제 와서 왜 그러는데 어, 형들 때문에? 아님 팀장님이 뭐라 하더나.”
“형들 그래 형들 매니저형들 눈치 보는 것도 진절머리 난다 남들이 알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사귀는 것도 싫고 다들 앞에선 괜찮다고 하면서 우리 이상하게 보는 거 못느껴? 그런 시선 일일이 받는 것도 지겹다 이제.”
“내가 조심할게 티 안내면 되잖아 그러니까 무섭게 그만하자는 얘기 그만해 내가 노력할게 응? 내가 잘못했어.”
이미 내 마음이 진심인걸 알면서도 매달려오는 태형인 나에게 받은 상처로 자존심도 많이 상했을 텐데 여전히 다정하게 내 마음을 달래려 애를 썼다.
“니가 그때 우스갯소리로 얘기했던 거 기억나? 부모님.”
“그건! 아무래도 시간이 좀...”
“아니 생각해보니까, 너 부모님 등지고 살 수 있어? 평생 불효자식 꼬리표 달고 우리 행복할 수 있을까. 난 자신 없어 태형아.”
“그래서 어쩌자고? 이제 와서! 그럼 니 내 안 보고 살 자신 있나.”
나에게 미련두지 않게 더 독해져야 했다.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여느 연인들처럼 우리가 단순하게 헤어지고 끝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떼써서 될일 아니란 거 잘 알잖아 지금 당장은 좀 힘들겠지만 결국엔 괜찮아 질거야 변하는 건 없어 그냥 예전처럼 돌아가면 돼.”
“어떻게 어떻게...변하는 게 없어. 시간이 걸릴 거란 거 알고 있었잖아 우리 그래서 지치지 않게 손잡고 버티기로 했잖아 내 손 안 놓을 거라 매.”
모질지도 못한 태형인 눈도 못 마주치는 내 얼굴을 붙잡고 눈을 맞춰오며 부드럽게 내 손을 잡아끌었다. 얽혀오는 손가락을 밀어내며 태형이 얼굴을 똑바로 마주했다. 큰 눈에 물기가 가득했다.
*
“아 형 거기서 더 빨리 도착해야 돼요.”
“나도 아는데 내 속도는 그게 최대야.”
“형이 좀 더 빨리 뛰면 되잖아요.”
“이미 내 최대한으로 빠르게 하고 있다니까.”
태형이와 석진이 형의 언성이 조금씩 높아졌다. 어느새 가라앉은 대기실 분위기에 각자 준비를 하고 있던 멤버들 표정도 굳어져 갔다. 태형이가 자꾸만 감정 조절을 못하고 형들에게 대들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나 미팅, 공연 준비를 하면서도 입을 꾹 다물어버리고 말을 안 하는 태형이 때문에 우리 둘이 싸워서 태형이 기분이 저기압 인가 해서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오는 형들에게 그냥 당분간은 이해해 달라며 나도 입을 꾹 다물어버린 게 벌써 며칠째였다.
“야 지민아 둘이 좀 얼렁 풀어라 왜 엄한 우리한테 화풀이야 무서워 죽겠네 다음은 내 차례 아닌가 몰러.”
부러 분위기를 풀어보려 장난치는 호석이 형을 노려보던 태형인 싸늘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여기서 박지민이 왜 나와요? 내가 지금 진형한테 얘기하고 있잖아요.”
“야 김태형 인마.”
“야 너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정신 안 차려.”
걷잡을 수 없게 험악해진 분위기에 남준이 형과 형들 얼굴이 잔뜩 굳어버렸다. 스탠바이 10분 전이었다. 불안한 듯 안절부절못하는 정국이의 모습에 구석에서 가만히 있던 몸을 일으켰다. 말려야 했다 이대로 무대에 올라가면 모두가 집중을 못할게 뻔했다. 태형이가 왜 저렇게 온몸으로 날을 세우고 벽을 치는지 나만 알기에 머리로는 수십 번 태형일 어르고 달래 이해한다고 속삭이고 싶었지만 힘없이 혼자 서있는 애처로운 뒷모습에도 선뜻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하, 진짜 못해먹겠네.”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기며 돌아서는 태형이와 눈이 마주쳤다. 핏발이 선 눈가에 눈물이 차오른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내는 모습에 더 다가서지도 못하고 문을 열고 나가는 모습만 멍청히 바라보고 있었다. 문을 박차고 나간 대기실에 적막만 맴돌았고 또 민폐를 끼친 것만 같아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태형이가 화가 난 것도 형들에게 대드는 것도 모두가 내 탓이어서
“태형이랑 도대체 무슨 일 있는 거야.”
팀 분위기가 엉망이었다. 카메라가 돌아가도 멍하니 있기 일쑤였고 대기실이나 식사시간엔 밖으로 나도는 태형일 매니저형들이 돌아가면서 혼도 내고 타일러도 봤지만 죄송하다는 의미 없는 말만 되풀이한다며 답답해했다. 형들 모두 말은 안 했지만 우리 둘의 문제로 인해 팀에 피해가 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게 형들에게 사실대로 말을 할 수도 없어서 답답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점점 날카로워지는 태형일 볼 때마다 속이 상하고 마음 한편이 얹힌 듯 답답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헤어짐을 직접적으로 윤기형에게 말한 뒤로 형들에게 말하기가 두려워 입을 다물었지만 남준이 형은 이미 모든 상황을 아는 사람이었다.
“태형이랑....”
“그만하려구요. 제가 찼거든요 그래서 저러는 거예요 얼마나 열 받겠어요 지 좋다고 했다가 이제 와서 그만하자는데 열 받을만하죠 그러니까 형 미안한데 이런 말 하기 염치없긴 한데 태형이 조금만 이해해주세요.”
“지민아.”
“첨부터 말이 안 되는 거 였어요 가만히 있는 애를 괜히 제가 흔들어서 민폐만 끼치고 죄송해요 너무 욕심을 부렸나 봐요 형이 제일 우려하던 상황 만들어서 진짜 죄송한데 그냥 모른척해주세요 부탁드려요.”
그때처럼 꼴사납게 울까 봐 얼마나 꾹꾹 누르고 참았는지 주먹을 꽉 쥐고 있던 손이 아려왔다. 형도 형까지 나를 탓하며 몰아세울까 봐 무감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볼까 눈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계속되는 태형이의 방황에 걱정이 된 남준이 형이 조심스럽게 나를 호출했을 땐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어서 모두가 잠든 새벽에 형과 마주했다. 지금 태형이와 나의 상황을 형에게 털어놓았지만 윤기 형 처럼 겁쟁이인 나를 나쁘다고 할까 내 마음속 진심은 털어놓지 못했다. 차분하게 들어주는 형에게 억지로 입술 끝을 당겨 웃어도 얼굴은 바라볼 수가 없었다. 죄책감 같은 거였다.
“후우...너는, 넌 괜찮아? 그러지 말고 태형이랑....”
“형 여기까지가 적당한 거 같아요. 형들 덕분에 기분좋은 꿈을 꿨던 것 같아요 그래서 행복했어요 그거면 돼요 더 이상은 제가 못 버틸 것 같아요 형들이 괜찮다고 이해해준다고 했지만 솔직히 눈치 보면서 사귀는 것도 저 힘들었어요 언제 들킬까 전전긍긍하면서 불안한 마음 갖고 남들 속이는 거 못하겠어요.”
울지 말자 울지 말자 내가 뭐라고 하고 있는지 사실 자각도 안됐지만 혹시나 조금이라도 우리가 어긋난 게 형 때문이라 생각할까 봐 마음 여리고 감성적인 남준이 형은 충분히 자기 탓이라 여길 수도 있어서 일부러 미운 말만 골라서 했다. 생각해보면 그 날 윤기 형은 내가 미워서 나쁘게 얘기한 것도 아니었고 헤어짐의 원인을 태형이 탓을 하고 있는 책임감 없고 겁쟁이인 나를 혼내고 있었다. 나 편하자고 내 마음 편하려 다짜고짜 형을 찾아가 토해내듯 내 감정만 말한 모두 내 잘못이었다. 그러니 모두 내가 다 끌어안고 나만 나쁜 사람이 되면 될 일이었다. 이제 와서 눈치 보느라 힘들었다 남들이 알까 불안하다는 내 말이 얼마나 한없이 이기적인 말인지 알기에 형도 나에게 실망했을게 뻔했다. 그래서 할 말을 잃은 건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던 모습에 마음이 아려왔다.
안 괜찮아요.... 형
사실은 조금 아픈데 아니 많이 아픈데 죽을 것 같은데 더 이상은 하면 안 될것 같아요.... 나만 아프면 나만 상처받으면 괜찮은데 모두가 상처받고 아프다면 그건 나쁜 거잖아요.
“집에 갔다 오는 사람? 어쨌든 모레 9시까지는 다 숙소로 귀가하시고 잘 쉬고 모레 보자.”
석진이 형 남준이 형이야 본가가 다 가까워 집에 무조건 가는 거였고 나머지는 각자 개인 시간을 가진다고 했었다. 머릿속도 너무 복잡하고 이틀 동안 숙소에서 마주할 태형이때문에 또 술 약속을 잡아야 하나 하며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매니저 형들도 집에는 다녀와야겠다며 나눠서 휴가를 간다기에 외출하기에 너무 민폐를 끼치는 건가 생각해도 숙소에만 있기에는 돌아버릴 것 같았다. 홍대나 갈까 하는 정국이 옆에서 술 마실 형들에게 연락을 하고 있는 찰나에 옷을 싹 갈아입고 가방을 챙겨서 나오는 태형이와 눈이 마주쳤지만 먼저 피하고 말았다.
태형이가 눈을 피했다.
남준이 형이 형들에게 뭐라고 잘 일러둔 건지 태형이와 나 사이에서 신경이 쓰일 법도 한데 어색하지 않도록 멤버들이 잘 조율해주는 덕분에 스텝들 앞에서는 아슬아슬하니 지내고 있었다.
“형! 뷔형 어디 가요?”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말없이 현관으로 향하는 태형이 뒤를 따르며 다급히 묻는 정국이 말에도 묵묵히 신발을 신으며 대꾸가 없었고 태형이 뒤를 졸졸 쫓아가며 끈질기게 물어댔다. 제가 알기로는 태형이도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다고 들었는데 난데없이 짐을 싸들고 나서니 덜컥 겁이 났다. 뭐라고 하는지 대화를 하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가 않아서 초조한 마음으로 소파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현관으로 나가 태형일 붙잡아야 하는건지 망설였다. 이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웠다.
“그렇게 신경이 쓰이면 물어보지 에휴, 도대체 두 사람 뭐하는 거에여.”
멍청하게 거실에 서있던 나를 끌어다 소파에 앉히는 정국이 손길에 정신이 들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뭔 삽질이냐며 넋이 빠진 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정국인 무심하게 태형이 얘기를 꺼냈다.
“누구 때문인지 상심이 아주 크셔서 머리 좀 식히러 다녀오신답니다.”
“아......”
“제주도, 다녀온데요.”
“응...”
“장난이고, 이전에 약속했던 거래요 그, 그 박보검 형이랑.”
예전에 한 번 듣긴 했었다. 휴가 생기면 화랑형들이랑 여행 다녀와도 되냐고 눈치 보면서 물어오던 태형일 째려보며 짜증냈던 기억이 났다. 그 형들도 나름 바쁜 형들인데 자꾸 거절하기 미안하다고 자기가 좀 떠 서 싸가지 없고 건방지다 생각하면 어떡하냐면서 갖은 애교를 부리며 허락해 달라했던 태형이때문에 결국에 웃음이 터져 새끼손가락까지 걸고 약속 복사하라며 끝까지 기분 풀어주던 태형이가 생각이 나서 눈가가 시큰해졌다.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눈물 때문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형! 지민 씨, 갔다 온데요 도망간 거 아니라니까.”
형이 돼가지고 뻑하면 운다고 놀릴까 봐 피곤해서 그런다고 방으로 뛰쳐 들어왔다. 감정조절이 안돼서 큰일이었다. 호석이 형이 신경 쓸까 봐 화장실문을 걸어 잠그고 울기도 여러 번 잠들지 못한 밤엔 흐르는 눈물에 소리가 새어나갈까 이불을 뒤집어쓰길 매일인 날이었다. 어떻게 해야 무뎌질지, 쉬울 줄 알았는데 그냥 혼자서 태형일 좋아하던 그때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면 될 거라고 했던 생각은 큰 착각이었어서 참고 견디기엔 도려내고 싶을 만큼 아픔이 커서 괴롭고 또 아팠다.
벌을 받는 게 맞는지 많이 아팠다.
휴가 내내 쉬지도 못하고 못난 동생 간호하느라 옆에서 곁을 지켜주던 호석이 형도 지쳤는지 잠든 걸보고는 조용히 거실로 나왔다. 열이 식은 몸이 약간 추웠지만 기운이 없어서 소파에 그대로 기대 누웠다. 시끌시끌하던 숙소가 조용하고 휑하니까 더 추운 것만 같아서 몸을 웅크렸다. 안 보고 싶었는데 보고싶었다. 하루 반나절을 꼬박 앓고 나니 휴가가 끝나가고 있어서 다들 잘 보내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단체방에 태형이 소식만 없어서 더 궁금했다. 형들은 뭘 하고 있으며 뭘 먹고 즐기고 있는지 인증샷을 보내오며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것처럼 요란했다. 호석이 형이 지민인 불쌍하게도 아프다며 걱정과 관심을 유발하는 메시지를 보내 모두가 걱정하게 만들었지만 정작 제일 신경 쓰이는 한 사람에게선 답이 없었다. 제주도까지 갔으니 사람 없는 곳만 가긴 힘들거라 생각했다. 유명해질수록 사생활은 없어졌지만 이럴 때는 또 유용해서 팬들이 왜 우리 생활을 알고 싶어 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사진 속 태형이의 표정이 어둡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초점은 안 맞았지만 우울한 기색 없이 친한 형과 보내는 시간이 즐거워 보여서 조금은 안심이었다. 태형이도 기분파에 가까워서 감정의 영향이 컸다. 또 이목구비가 화려하다 보니 티가 금방 나서 표정관리 잘하라며 회사에서 지적도 많이 받아 내 앞에서 표정 연습 까지 해가며 고치려 노력하는 애였다. 보고 나니까 더 보고 싶었다. 선명하게 나온 사진 한 장 없지만 내가 모르는 지금의 태형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애틋해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 앞의 태형인 슬프고 아프기만 하니까
“아씨 놀래라! 인마 애 떨어질뻔했네 아프다며? 병원 안 가도 돼? 컨디션도 안 좋은 놈이 추운데서 뭐 하는 거야?”
“행님, 잔소리쟁이 행님 왔다 보고 싶었어요. 형범이 형.”
“낯간지럽게 무슨, 밥은 먹었냐.”
“죽 먹었어요 지민이는 행님들 없어서 얼마나 쓸쓸하던지.”
“그러게 평소에 좀 잘 해주세요.”
매번 징그럽다 귀찮다 하면서도 매니저 형들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우리가 제일 멋있고 잘 생겼다고
어찌나 팔불출스럽고 유난인지 항상 우리가 우선인 사람들이었다. 데뷔 초에 같이 고생해서 이 자리까지 오기까지 형들이 없어다면 정말 방탄도 존재하지 못했을 거다 그래서 우리 멤버들만큼 형들도 너무 소중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내일 아침에 바로 병원 가자.”
“괜찮아요 오늘 푹 자면 괜찮을 것 같아요.”
방관자 태형이와 나 사이를 알면서도 곁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형은 그렇다고 우리를 지켜주지는 않았다. 피디님께는 형이 에둘러 얘기한 덕에 수습은 됐지만 아버님은 뻔히 보이는 거짓말로 속일 수 없었다. 혹시라도 태형이 아버지께서 정말 태형일 팀에서 탈퇴시킬까 봐 무섭고 겁이 나서 형범이 형을 통해 아버지께 걱정시킬만한 일 절대 안 하겠다고 제가 다 포기할 테니 재계약할 때까지만이라도 방탄 지키게 해달라고 형을 통해 빌고 나서도 아버님께서 당장이라도 태형일 데리고 가실까 봐 두려웠다. 피디님이나 내 부모님께 알리시겠다던 날 선 목소리보다 태형일 못 보게 될까 봐 그게 더 무서웠다.
“태형이 아직도 안 들어왔어? 아 미안.”
“괜찮아요 형, 태형이... 아직 안 들어왔어요?”
투어하고 한국에서 휴가가 생기면 밖으로 나도는 태형이때문에 형들 사이에서 말이 많아져도 아무도 태형이에게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나갔다 하면 인사불성이 돼서 매니저형들에게 업혀 들어오기도 여러 번 또 언젠가는 홍콩공연에 출국시간까지 공항에 도착을 못해서 그다음 비행기를 타고 와 형들 속을 새까맣게 애태웠다. 잠은 제대로 자는지 까칠한 얼굴에 속이 상해서 식사 메뉴 정할 때 몸보신될 만한 걸로 준비해달라고 매니저형들에게 따로 주문하기도 여러 번이지만 대기실에서도 도통 밥을 먹지 않는 태형이때문에 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억지로 밀어 넣어 내가 소화제를 달고 살았다.
잠이 안 와서 연습실이라도 갈까 침대에 누워서 한참을 망설이다 일어섰다. 귀찮고 몸도 무겁고 사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면 태형이 생각만 나서 후드만 걸치고 숙소를 나섰다. 늦은 시간 이어서 팬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내밀고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귀여워서 웃으니까 연습하러 가냐며 몸 상한다고 쉬엄쉬엄 하라며 잔소리를 하는 게 부산에 있는 엄마가 생각이 나서 금방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시간 너무 늦었다 얼른 들어가요 집에서 걱정하겠어.”
우린 건강 너무해서 아무도 두드려 건들지 않는다며 태형이 말투를 따라 하는데 순간 너무 웃겨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나 혼자서 보내기 위험하다며 가드 해줘야 한다며 장난까지 치는데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근데 지민아, 요새 태형...”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낯선 벤 한대가 숙소 앞을 지나가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숙소에서 조금 지나 주차된 차 쪽으로 시선이 몰렸다. 문이 열리고 차에서 내리는 얼굴이 익숙했다. 나를 봤는지 인사를 해오는 그는 곤란해 보이는 눈치였다.
“어, 지민 씨.”
“아 안녕하세요.”
이미 가라앉은 분위기에 내가 더 눈치가 보였다. Y그룹 매니저인 그를 팬들도 알아봤는지 표정이 안 좋아졌다.
“지민 씨, 저 좀 태형 씨가.....”
“아 네.”
선팅이 짙게 돼서 보이지는 않았는데 팬들 때문에 숙소 바로 앞에 주차하기는 좀 그랬던지 몇 발자국 떨어진 벤 앞으로 걸어가는데 심장이 이상하게 쿵쾅됐다.
“어 오늘 생일 이어 가지고 파티했는데 좀 많이 마셨어요.”
“네.”
“태형 씨가 자꾸 혼자 가겠다는 거 위험할 것 같아서...”
“네 고맙습니다.”
차 문을 열어주려 운전석으로 향하면서도 계속해서 태형이 변호를 하는 그가 이상했다. 선팅이 짙게 돼서 분명 차 안이 보이지 않았는데 문을 열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서 불안했다.
아, 아프다.
지금 이건 너무 잔인하잖아
천천히 열리는 문 사이로 보이는 엉겨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가슴에 칼날이 푹 박힌 것처럼 너무 아팠다. 내 시선을 느낀 듯한 여자애가 고개를 움직이려 하자 그 애 얼굴을 감싸고 더 깊게 입술을 파고드는 태형이와 눈이 마주쳤다. 코끝이 시큰해지고 눈가가 서서히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나른하게 감기는 두 눈이 너무도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