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화양연화

[뷔민]화양연화_31

여의도뽀로로 2017. 11. 28. 19:30

[뷔민]화양연화_31



시간이 꽤 흘렀다. 전화를 해도 문자를 해도 답이 없는 태형이 때문에 애가 탔다. 술도 못하는데 혼자서 홀짝홀짝 마시던 술이 꽤 됐던 거 같은데 이 동네 지리도 모르면서 어디로 사라진 건지 걱정이었다.
늦은 새벽시간 이어서 거리에 사람들도 없었지만 한남동 주택가는 차가 없으면 두 다리로 한참이나 걸어나가야 하는 불편을 가진 동네였다.


윤기형까지 나서서 태형일 이해하고 화해 하란식으로 이야기를 해줬지만 당사자인 태형이가 피하고 들어서 좀처럼 얘기를 할 기회가 없었다. 거짓말을 한 내 잘못이어서 참고 먼저 숙이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본 척도 안 하고 연락하는 족족 거부하는 태형이 때문에 해명을 하려고 했던 마음도 쏙 달아나버렸다. 확실히 전과는 변한 태형이 모습에 겁도 나고 신경이 쓰였다 뭐든지 먼저 맞춰주고 배려해주던 모습은 없었고 귀찮아하며 묘하게 피하는 모습에 두려웠다 버림받을까 거짓말을 해서 질린다고 할까 하는 상상에 곁에 있을 수가 없었다. 술이라도 마시면 괴로운 걸 잊을 수 있을까 싶어 정국일 불러냈고 또 어떻게 하다 보니 최현형과 함께하게 됐다.


문이 열리고 들어선 태형이의 모습에 정말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시 제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싸늘해서 심장이 쿵쿵거렸다.
정말 최현 형이랑 아무것도 안 했는데 괜히 지레 겁먹어서 나도 모르게 표정관리가 안됐다. 같이 있는걸 눈 앞에서 보고도 자리에 앉는 태형이 때문에 진짜 겁이 났다. 술자리가 끝나고 최현 형을 핑계로 헤어지자고 할까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여보 세요]


혀엉- 눈에 보이는 게 없어서 숙소에 있을 윤기 형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솔직하지 못해서 이렇게 됐을까 아님 정말 좋아하는 마음이 태형이보다 내가 훨씬 더 커서 그런걸까 하는 상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 그대로 지나쳐버린 내 잘못이었다. 태형이에겐 널 오롯이 나에게 다 내보이라고 해놓고 정작 나는 태형이를 속이고 거짓말로 기만해서 지금 같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날도 추운데 어디서 방황을 하고 있는지 태형이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근처에 작은 공원 하나 있는데 가봐’ 오전 2:32


술기운이 올라오니 나중엔 좀 오기가 생겼다. 분명 술자리에 최현 형도 함께하는 걸 알고서 태형이가 찾아온 거라면 걱정돼서 신경 쓰여서 온 것이라고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짓궃게 구는 최현 형을 그대로 두고 태형이 앞에서 보란 듯이 친하게 굴었다. 서로에게 상처만 되는 행동인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해버렸다.



‘정국인 잘 챙겨서 보낼 테니 걱정말고’ 오전 2:33



진짜 이 형은 쓸데없이 다정하다. 그게 나한테는 독이었다.



[지민아 얘 내 전화도 안 받는다]
“아 형 찾았어요 미안해요”
[진짜 하아 너네 씨발스러운 거 알지? 외박 안된다 빨리 기어 들어와]
“네네 고마워요 형”



걱정이 된 윤기형의 전화를 받으며 추위도 잊을 만큼 동네를 돌다 보니 그의 말대로 가게에서 조금 많이 떨어진 한적한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끽끽거리는 조금은 기괴한 소리를 내는 그네에 등이 축 처진채로 느리게 그네를 타고 있는 태형이가 보였다.



“하아....여기서 뭐해 너”
“아....”
“여기가 숙소야? 길도 모르면서 어떻게 갈라고 돈도 없다매”
“남이사”
“자꾸 그렇게 삐딱하게 말할 거가? 얘기 좀 하자해도 계속 피하면서 여긴 왜 왔는데 그럼”



앞에 서있는 나를 한 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푹 숙여버리는 태형이의 모습에 열불이 났다. 한 번도 피하거나 물러서는 일이 없는 태형이가 자꾸만 돌아서려고 해서 마음이 불안했다.



“하아...태형아, 그때는 내가 거짓말하려고..”
“됐다 알겠다”
“김태형! 후...나도 진짜 이제 모르겠다 니 맘대로 해라”



들을 생각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태형이의 모습에 정말 우리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아서 슬퍼졌다. 잘못 했다고 내가 다 잘못했다고 빌고 매달리고 싶은걸 꾹 참고 뒤돌아섰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입술을 힘껏 깨물었고 가려고 했는데 소매를 붙잡아 오는 손길에 더 나아가지 못했다.




“짐나 지짜 우리 헤어지나 흐윽...내 진짜 아직 마음에 준비가 흐허엉”



소매를 붙잡고 허리쯤 고개를 파묻고 오열을 하는 태형이 때문에 깜짝 놀라서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피하는 줄 알고 아예 허리를 끌어안고 몸을 들썩거리는 태형이가 황당해서 어이가 없었다. 모자란 숨을 헐떡거리면서 웅얼거리는 태형이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고 자꾸만 헤어지기 싫다고 같은 말만 반복하면서 내 등에 눈물을 쏟아냈다. 하아....
꽉 잡은 손을 간신히 붙잡아 떼어내서 몸을 돌렸다.



“허엉 흐으 짐나 짐나 흐 우리 히끅 헤 흐아”



어두워서 잘못 봤었는데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술에 취한 건지 열이 올라있었고 눈물 콧물 쏟아내며 울음을 쏟아내는 입에선 술냄새가 풀풀 풍겼다.
움직이지 못하게 얼굴을 꼭 붙잡고 있으니 고개를 흔들며 자꾸 품으로 파고들어서 뒤로 밀려났다.



“태형아 태태 뚝 그만 울고 내 봐봐”
“시러시러 흐으 짐나”
“하아 니 어디서 술 더 마셨나? 정신 좀 차려봐 봐”



이 정도 정신을 놓을 정도로 술을 마신 건 아닌데 엉겨 붙는 모양새가 좀 많이 이상했다.



“야! 정신 좀 차리라고! 진짜 니 놓고 가기 전에 딱 서봐”


일어서지도 못하는 정도로 흐느적거리는 게 어디서 술을 더 마신 게 분명했다. 어깨를 붙잡아도 자꾸만 품으로 쏟아지는 몸을 감당하지 못해 뒤로 밀려났고 목을 감싸고 매달려오는 무게를 견디지 못해 뒤로 넘어졌다. 완충제가 깔려서 아프진 않았는데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바닥이 너무 차가웠다.


“윽! 하아....무거워”


뭐가 그리 서러운지 아이같이 서러운 울음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그냥 마음이 찡했다. 평소에 눈물이 많지 않은 편인 태형이 쏟아내는 눈물에 가슴이 먹먹했다. 참았던 모든 것들이 터진 그런 설움이었다.
바보야, 그만 좀 울어. 혼자 멋있는 척은 다하더니....
알록달록한 호석이 형 비니가 머리끝에서 달랑거렸다. 천천히 팔을 들어 들썩거리는 머리에 걸린 비니를 벗겨내고 뒤통수를 토닥거렸다. 에휴 맨날 멋쟁이라고 부르라고 해놓고는 겁쟁이가 따로 없었다. 손가락에 걸리는 부슬거리는 머리카락을 살살 훑어내리니 조금은 진정이 됐는지 깊은숨을 내쉬며 어깨에 기대 오는 태형일 끌어안았다. 얼마나 누워있었을까 파카를 뚫고 느껴지는 한기에 몸이 절로 떨려 휑한 태형이 목을 더 끌어안았다.



“울고 싶은건 난데 니가 왜 우냐고 참나,
있잖아 태형아 어...처음부터 솔직하지 못했어... 고백도 했고 우리 서로 좋아하니까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어, 근데 니가 이렇게 신경 쓰고 싫어하는 거라면 처음에 얘기했을 거야....그전에 내가 숙소에서 엄청 운 날 있잖아 그냥 니가 이유도 안 물어 본 그 날, 그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어쩌다 최현 형이 알게돼서 티가 많이 났었나 봐 니만 몰라줬다 바보야, 어쨌든 형이 알게 됐어 가지구...어...”


자존심보다 솔직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은


“그래서? 사겼나 하아....그럼 그 새 아니 그 형이 한 말이 맞는 거였네”


눈물 콧물 쏟아내던 사람 맞는지 고개를 발딱 들고선 퉁퉁 부은 얼굴로 눈을 맞춰오는 태형인 어이가 없는지 뭔가 억울해 보였다.


“어? 뭐가?”
“아니 그래서 어쨌든 그 이제 내 좋아하는 거 들켜서 그 형이랑 사겼다고? 이 바보야! 그런다고 사귀는 멍청이가 어딨노!”
“이씨- 그럼 어떡해 소문이라도 나면 우리 다 끝장나는데!”
“이제 어 그럼 그 형 좋아해서 사귄 거 아니네 그럼?”
“진짜 어쩔 수 없었어, 근데 그때는 진짜 솔직히 무서웠어...”
“하 진짜 나는 아 진짜 박지민 존나”


또 눈물이 그렁해서는 어깨에 고개를 묻는 태형이 때문에 나도 괜히 눈물이 찔끔 났다.


“하씨 최현은 돈도 내보다 많고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크고 내가 꿇리잖아 그래서 그 이제 니 내한테 질린 줄 알고 내가 얼마나”
“내야말로! 니 맨날 내한테 틱틱대고 술 마시고 늦게 오고 왜 그러냐고 물어도 다 씹고 진짜 말 하래도 말도 안 하고 그리고 내가 몇 번이나 얘기했제 남자 관심 없다고! 근데 니가 계속 예민하게 구니까 어떻게 말을 하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웅얼거리는 태형일 밀어내며 핏대를 세워가며 쏘아붙이자 품에 안겨오며 고개를 파묻는 뒤통수가 미워서 쥐어박았다.
말도 안 되는 오해를 서로 하고 있었단 사실이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바람 빠진 헛웃음만 지었다.


“짐나 진짜 그럼 그 이제 내가 첫사랑이네”
“니는 양심도 없나 진짜 짱난다”


고백한 것도 내가 먼저고 더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 자존심도 상하고 받아들이는 쪽도 당연하게 나인데
얼마큼 자존심이 더 없어야 하는 건지 해도 해도 너무했다.


“니는 내한테 그럴 말할 자격이 있나”
“당연하지! 이제 그 그 그거는 니랑 첨 했는데 그니까 니도 나도 우리는 첫사랑인 거지”
“뭐,머라노? 잠깐만 니 내랑 첨 했다고?”
“어! 그니까 우리 헤어지지 말자”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당연하게 경험이 꽤 될 거라고 생각한 나를 비웃듯이 동정남이었단 태형이의 고백은 충격이었다. 동정남인 것도 모자라 남자랑 첫 경험을 한 태형이에게 갑자기 죄책감이 들었다.


“왜 대답이 없노? 어? 어?”


볼을 붙잡고 눈을 맞춰오는 태형이의 얼굴에도 가만히 보고만 있으니 점점 미간을 찌푸리며 심각해지는 얼굴에 어색한 웃음만 나왔다.


“으 술냄새! 쫌 떨어져 봐라”
“씨이 내가 누구 때문에 어 이제 술 마셨는데!”
“아니 도대체 어디서 더 마셨노?”
“아 몰라 진짜 토할 거 같애 이제”
“윽 절로가”


속이 안 좋은지 하얗게 질려가는 얼굴을 붙잡고 밀어내도 위에서 누르는 힘에 움직일 수가 없어서 불안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얼굴에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눈을 질끈 감았다.

쪽- 축축한 입술이 가볍게 닿았다 떨어지더니 위에서 누르던 몸이 가벼워졌다.


“그냥 처음엔 다 좋았다. 맨날 같이 붙어있고 매일 밥도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게임도 하고 사람들 눈 피해서 몰래 만날 일도 없고 그냥 옆에 있으니까 불편할 게 없었지. 솔직히 그냥 연애하는 건지 어쩐 건지 그런 마음도 있었어 한창 그 나 불 타오를 때 말고는 그냥 이제 약간 그런 마음도 있었다 어...
근데 있잖아, 짐나 나 진짜 그때도 얘기했지만 니한테 사귀자고 한 거 후회 한 적도 없지만 음...가볍게 얘기한 거 아니야 형들한테도 성재한테도 말한 거 후회 안해 그만큼 너 좋아해 그래서 니가 관심 갖는 거 니가 불안해하는 거 다 신경이 쓰여 하루에 열두 번도 니 기분이 어떤지 눈에 안 보이면 불안하고 촬영하다 힘들면 니한테 전화해서 징징대고 싶은거 참고 또 참아 니가 질릴까 봐 나 싫어할까 봐”
“....내가 왜 싫어해”


벌러덩 내 옆에 똑같이 누운 태형인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독백과도 같은 말을 쏟아냈다. 추위에 차가워진 손을 잡아오는 태형이의 커다란 손이 포근해서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이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했다.


“우리가 어긋날까 불안해하는 널 옆에서 보는 나도 마찬가지야 니가 날 떠날까 날 버릴까, 불안할 때도 있어 자꾸만 니가 뒤로 물러설 때면 얼마나 마음이 조마조마했는지 모를 거야 진심인데 니한테 내 마음 가볍지 않은데 그것만으로도 니를 안심 시키지 못한다는 건 내가 잘못해서 그런거라고 혼자 생각하니까 너무 좀 지치더라.....후우
나도 그래 니가 나만 봤으면 좋겠고 나한테만 웃고 장난쳤으면 하는데 그게 우리 둘 사이에 끊임없는 시험일 거 같애. 니가 나한테 불안하면 나도 불안해 물론 서로에게 조심하면 좋지 근데 우리는 앞으로도 이럴 거야 오해도 생길 거고 가끔씩은 지치겠지만 그래도 짐나 절대 거짓말은 하지 말자 그냥 그냥 솔직해지자. 알았나? 니가 딴사람 좋아졌다고하면 쫌 많이 열 받을 거 같긴 한데 그래도 이건 우리 약속하자.
자꾸만 끝날 거 같은 생각하지 말고 진짜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사랑하자고 불타오르게 어? 뜨겁게 사랑해줘”

고개를 돌리고 눈을 맞춰오는 태형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진짜 진짜 좋아해. 태형아”
“나도 진짜 진짜 진짜 좋아해. 지민아”

이리와- 팔을 뻗어 끌어당기는 태형이 품으로 쏟아졌다. 풀풀 나는 술냄새도 옷을 뚫고 올라오는 한기도 조금은 스산한 공원 분위기가 그 어느 영화보다 더 로맨틱해서 너무 행복했다.


“거짓말해서 미안”
“나도 화나서 막말한 거 미안”


가슴팍에 고개를 파묻은 채 웅얼대는 내볼 언저리에 입술을 갖다 대며 똑같이 대답하는 태형이 때문에 웃겨서 고개를 들었다.




“뽀뽀”

입술을 쭉 내밀고 평소라면 하지 않는 애교를 부렸건만 진짜 입술만 꾹 붙였다 떼는 태형이가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쳐다보니까 나름 억울한 표정이었다.

“그 나...술냄새.....나는데”
“내 지금 좀 윤기 형 말듣기 싫어졌어”
“엉?”


약간 맹하게 쳐다보는 태형이가 귀여워서 위험했다. 윤기 형의 쌍욕이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좀... 미안해 형들


“가기 싫다고.......숙소”
“아 추브라 그 약간 갑자기 춥제? 짐나 가자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