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민]화양연화_30
[뷔민]화양연화_30
냉전 아닌 냉전으로 치닫아 버린 지금 머릿속이 복잡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지민이의 연락을 의도치 않게 씹어버린 후로는 말 한마디도 안 했다. 몇 번의 눈치를 보고 쭈뼛거리며 주변을 맴돌던 지민이를 피해 친하지도 않은 어느 이름 모를 후배 대기실 앞을 서성였고 무대에 올라가야 한다며 정국이가 찾으러 올 때까지 정처 없이 방황을 했다.
“뷔형 싸웠어요?”
“아니 그냥 싸우긴 뭘 싸워”
“근데 둘이 어 음 쫌 이상한데여”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아니야”
“어....이따가 지민이 형이 연습 끝나고 술 한잔 하자고 하던데”
“아 그래?”
으레 숙소에서 자주 술을 마시니 그런가 보다 했지만 정국이의 덧붙이는 말에 나도 모르게 걸음이 느려졌다. 정말 연말 시상식이 며칠 남지 않아서 지민이는 매일 SN연습실과 무용 연습을 번갈아가며 소화하고 있었고 오늘은 SN연습인 걸로 알고 있었다. 분명 늦게 끝날 텐데 연습이 끝나고 정국이더러 밖에서 따로 한 잔 하자고 했다는 말에 표정 관리가 안됐다.
“그 형도 나중에 같이 갈래여?”
“아니 나 잠을 별로 못 자서 피곤하네. 오랜만에 둘이 오붓하게 갔다 와”
눈치 빠른 정국이가 내 기분이 안 좋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조심스레 물어오는 말에 괜찮은 척하며 웃었지만 자꾸만 지민이와 어긋나는 상황에 마음이 불안했다.
“어제 게임을 진짜 너무 늦게까지 해서 진짜! 갔다 와 둘이 나 괜찮아 지민이 너무 맥이지 말고”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적막만 흘렀다. 더 이상 내 주변에 맴도는 지민인 없었고 그냥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지민이 때문에 속이 타들어갔다. 타자마자 잠이든 형들은 고개가 꺾여라 졸고 있었고 나는 내 뒤에 앉은 지민이가 신경이 쓰여서 잠을 자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까맣게 물든 창밖만 바라봤다. 지민이 역시 잠들지 않은 건지 핸드폰으로 타자 치는 소리만 들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고 지민이와 있었던 일을 돌아보게 되니 얼마나 내가 이기적이게 굴었는지 옆에서 지민이가 참고 견뎌준 것도 잊을 만큼 내가 힘들다는 핑계로 지민이에게 함부로 대한 것만 같아서 후회를 해봐도 이랬다 저랬다 하는 마음에 심란했다. 정말 서로의 사생활이 없어서 그런 건지 서로에게 구속하고 이해해주지 않으면 서운한 감정이 먼저 들어버리는 상황이 그전에 만났던 사람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주인도 없는 방에 쳐들어와서 실컷 침대 위를 점령했다. 주인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괜히 슬퍼졌다. 포근한 지민이 냄새에 마음이 울적해서 침대 위에 있는 인형을 꽉 끌어안았다. 청승도 이런 청승은 없을 것 같은 게 지민이가 안고 자는 인형만으로도 몸이 달아올랐다. 진심 쓰레기 같은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
이 상황에 그게 생각난다는 거 자체가 미친 거지
향수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바디로션을 지민이와 함께 쓰고 있는데 샤워하고 나서 로션을 꼭 바르는 지민이 때문에 침대에 베인 은은한 향에 보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았다.
혼자서 인형을 끌어안고 웃다 울다 하니까 호석이 형이 지민이 보고 싶어서 미쳤냐면서 어이가 없는 표정과 목소리로 타박했지만 형 말이 사실이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형들한테 이 상황을 상담해야 하는 건지 진지하게 생각해봐도 싸울 때마다 쪼르르 다 얘기하기도 민망했고 결국엔 니네 그럴 줄 알았다고 할까 봐 겁이 나서 더 조심스러워졌다.
매일같이 붙어있는대도 멀리 떨어져있는 것 같은 이 기분이 뭔지...
지민일 너무 좋아해서 소유욕 같은 그런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정말 지민이가 힘들면 기댈 수 있고 보듬어 줄 수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 마음처럼 쉽지않아서 괴로웠다.
내일 오전 스케줄이 없어서 그런지 피곤한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계속 정국이와 술 약속을 한 지민이가 신경이 쓰여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 때문에 열 받아서 그런 거겠지...
순간적으로 돌아서 지민이에게 차마 하지 못할 말을 내뱉었고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미안했었다. 이렇게 계속 피한다고만 해서 될 일이 아닌데도 정말 지민이에게서 부정의 말을 들을까 봐 겁이 났다.
“너 뭐해?”
“아 지민이 형이 챙겨 오래서요”
“뭘?”
“옷이여. 아 어디 있다는 거지”
날씨가 쌀쌀해서 겉옷이라도 챙기는 줄 알고 다시 누워서 핸드폰을 하는데 이상하게 느낌이 싸했다. 지민이 옷 장을 열고 이쪽저쪽 다 뒤지며 어딨냐며 구시렁거리던 정국인 결국은 지민이에게 전화를 걸었고 관심 없는 척 핸드폰 만하던 내 귀는 이미 정국이 쪽으로 한 껏 열려있었다.
“아 있다 아 바로 앞에 있었네. 끝났어여? 어디로 가요? 주소 찍어줘요 형은 언제 출발해요? 아아 오케 알써여”
야! 찾았다는 옷을 집어 드는 정국이의 손에 들린 옷을 보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옆자리에 누워있던 호석이 형도 깜짝 놀라서 왜 그러냐며 타박하는 걸 뒤로한 채 침대에서 일어나서 정국이에게 다가섰다. 전화를 끊고 쇼핑백에 주섬주섬 옷을 챙기던 정국이도 놀라서 날 바라봤다.
“그 그거 왜 챙겨?”
“아 지민이 형이 가져오라고 했다니까요”
“하 거기 술 마시는데 최현도 와?”
“어? 형 어떻게 알았어요?”
“가자! 나도 가. 빨리 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정국일 재촉했다. 벙찐표정으로 바라보는 두 사람을 애써 무시하며 계속 정국일 닦달했다. 진짜 이렇게 버림받을 수는 없었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서 돌아갈 수도 없는데 무릎을 꿇든 울면서 빌던 결판을 내야 했다.
“형 근데 그러고 안 춥겠어여?”
늦은 시간임에도 엄청 힘준듯한 스타일링에 웬일로 정국이가 옷차림에 신경을 쓰나 했다. 정신없이 정국일 이끌고 택시를 타고 내 몰골을 보니 기가 찼다. 아 눈 아파- 놀리는 듯한 정국이 말투가 더 위축되게 했다. 행여나 정국이가 지민이에게 전화를 할까 봐 허겁지겁 끌고 나왔고 비니도 대충 뒤집어쓰고 겉옷도 아무거나 대충 집어 입고 맨발에 슬리퍼까지 하아...진짜 호석이 형과는 스타일이 안 맞았다. 내 방까지도 급해서 눈에 보이는 호석이 형 옷을 입은 게 잘못이었다. 내 실크 잠옷 위에다 걸쳐 입은 것들이어서 답이 없었다. 안 뿌리던 향수를 뿌린 정국이와 너무 비교가 돼서 절망적이었다.
택시 안에서도 신나서 기대된다는 정국이 목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전 남친과 현 남친의 재회인 줄은 꿈에도 모르는 정국이 때문에 속이 탔지만 지민이 과거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근데 형도 최현 선배님 밖에서 처음 보져? 아 형이 김스치면인연인데 요샌 지민이 형이 더 밖에 나가 있는 거 같애요”
“그치 정국아 니가 생각해도 지민이 요새 밖으로 도는 거 같지 그 이제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싸웠네 싸웠구만 형이 뭐라 했죠? 지민이 형한테”
맨날 말로는 놀기좋고 편한건 나라면서 지민이를 서운하게 하던 정국이었다. 싸울때만큼은 절대적으로 지민이 편에 서는 정국이가 아주 조금 미웠다.
남자들만 모여있다보니 어린 정국인 이래저래 치였고 그러다 사춘기엔 한 마리 들짐승 같은 형태로 날뛰었고 그런 정국일 곁에서 지민이가 제일 많이 케어해주고 보듬어주다보니 어느샌가 은근히 지민이에게 먼저 응석부리고 챙기며 감싸고 돌아서 가끔씩은 나보다 더 지민이 일에 신경쓰고 걱정할 만큼 자라 질투를 느낄 만큼 두 사람의 케미가 좋아져서 큰일이었다.
아 진짜 망했다. 조용한 분위기에 딱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외관에 내 몰골을 다시 훑어봤다. 오늘따라 꼬질 해보이는 몰골이 쪽팔렸다.
“정국아 형 좀 쪽팔리나?”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은 표정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테이블 몇 개에 오픈된 주방이 눈에 들어왔고 정말 아는 사람들만 올 법한 작은 규모의 이자까야였다. 익숙한 얼굴이 보이지 않아 두리번거리던 우리에게 요리를 하느라 바쁘신 사장님이 손짓을 하며 위치를 알려줬다. 주방을 돌자 보이는 좁은 복도에 늘어진 다다미방은 정말 일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새어 나오는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어느 방인지 안내를 해줬다.
“지민아 천천히 마셔”
“왜요오오 선배님 아까워요? 아아 오늘은 제가 쏜다니까여”
“야야 벼룩의 간을 빼먹지 너한테 얻어먹었다간 체하겠다”
으흐흥- 저거 지금 콧소리야? 지금
허 아주 혀가 반토막이 되가지고 최현의 말에 웃기다며 까르르 넘어가는 지민이의 목소리에 빠른 걸음으로 문을 열어젖혔다. 볼은 발그레해가지고 식탁에 반쯤 기대 있던 지민이가 눈에 먼저 들어왔고 새벽에 봐도 재수 없는 최현은 반질한 얼굴에 자연스럽게 내린 머리와 편안한 스타일링으로 나이차가 무색하게 어려 보여서 다시 내 몰골이 생각나 비교가 되서 쪽팔렸다.
“어? 태형이 웬일이야? 아 지민이가 연락했나?”
지민이가 요새 최애로 좋아하는 태민이 형님까지.
하아....적들의 아가리에 들어왔구나 내가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형 안녕하세요”
표정관리가 안돼서 억지로 인사를 하며 문을 붙들고 부들부들 거리던 내 뒤로 다가선 정국이가 웃으면서 인사를 우렁차게 해왔고 당황한 듯한 내 등장에 정국이가 가세하니 태민이 형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줬다. 인사를 하는 내내도 지민이만 바라보고 있던 나는 그래도 반가워하지 않을까 하는 헛된 상상에 지민이를 바라봤고 입을 꾹 다물고 내 쪽으로는 쳐다보지도 않고 쥐고 있던 술잔만 만지작거리는 모습에 괜히 눈치가 보였다.
“일단 앉아 앉아”
지민이 옆자리는 태민이 형이 이미 앉아있었고 최현 옆자리는 죽어도 앉기 싫어서 얼른 문 앞 바로 식탁 중앙에 자리를 잡아버렸다. 최현과 지민이 사이에 기분이 묘했다.
“형 정국이는 처음 보죠? 얘가 얘네들 막내에요. 막둥이”
“아아 정국씨 반가워요”
“어어 선배님! 말씀 편하게 하세여 그냥 정..정국이라고 부르시면”
정국이는 옆자리에 앉은 최현의 내민 손에 어쩔 줄 몰라 부끄러워하며 몸을 배배 꼬았다. 진짜 나한테 반만이라도 저렇게 해줬음 업고 다녔다 전정국
“얘는 지민이랑 동갑인 태형이요”
“알아”
“어 알아요?”
“응 같이 술도 한 잔 했었어”
“아 진짜요?”
친한척하며 웃는 얼굴에 속이 부글부글거렸다. 당신 나랑 웃으면서 우리 술 마실 사이 아니잖아 지금! 외치고 싶은걸 꾹꾹 눌러 담고 지민이 손등을 툭 치니까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맞춰왔다.
“왜 왜 왔어?”
“어? 아 그...그냥 심심하기도 하고 태민이 형도 오랜만에 보고”
잔뜩 부은 얼굴로 퉁명스러운 지민이 말투에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니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팽하니 돌리는 모습에 마음이 불편했다.
“저녁들은 먹었어?”
“네네 저희 먹었어여”
“그럼 술만 더 시킬게”
최현이 밖으로 나가 주문을 하러 간사이에 계속 지민이를 바라보며 나를 좀 봐달란 식으로 간절하게 옆얼굴을 힐끔거려도 나는 아예 무시하며 몸을 틀고는 정국이에게 말을 거는 지민이가 야속했다.
“아 태형이 넌 콜라 시킬까? 너 술 못하잖아”
진짜 오늘 완전 열 받게 하네! 문을 열고선 나에게 아주 다정하게 친절하게 음료를 권하는 최현의 목소리에 속에서 열불이 올랐다. 엿 먹이려고 일부러 저러는 건가 싶어서 잠깐 욱했지만 웃으면서 아니라고 술 같이 마시겠다며 오기를 부렸다.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해서 배가 고픈데 죄다 나랑 지민이는 싫어하는 비린 것들 뿐이었다. 깡 술만 마시게 생겨서 마음을 다잡아봐도 끝까지 정신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 나한테 믿음이 안 갔다. 가득 채워진 술에 건배를 하며 첫 잔은 원샷이라는 공식을 외치는 정국이의 목소리를 안주삼아 눈을 질끈 감고 삼켰다.
간간히 대꾸는 하지만 현저하게 말이 없어진 지민이는 술만 들이켰다. 걱정이 돼서 나도 모르게 안주라도 주려고 젓가락을 집어 들었는데 정국이 앞에 놓여있던 계란찜을 지민이에게 밀어주는 최현 때문에 젓가락을 도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형! 왜 이렇게 지민이만 챙겨. 나한테 좀 그렇게 해줘 봐요”
“지민인 이쁘잖아.
지민아 밥 안 먹었잖아 속 버리니까 먹고 마셔”
“참나 완전 어이없어요 형”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왔지만 마음먹고 온 게 무색 할 만큼 다정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 더 기분이 이상했다. 적어도 지민이가 불편해 보이는 기색이나 눈치라도 볼 줄 알았다. 보란 듯이 방긋방긋 웃으면서 최현을 꿀 떨어지는 시선으로 본 다는 건 정말 상상도 못했었다. 나는 안중에도 없고 넷이서 신이 나서 대화를 이어가는데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태형인 민호 형이랑 자주 뭉치더만 우리도 좀 껴줘라 얼굴 잘생겨야 껴주는 거야? 너 분위기 메이커라며 민호 형이 아주 태형이 너 귀엽다고 나보고 얼마나 구박하는 줄 알아?”
“드라마 잘 봤어 활동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드라마까지 찍느라 고생했겠네”
“아 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친한 척하며 말을 거는 최현에 어이가 없어 예의상 감사인사를 건넸는데 반응이며 분위기가 싸해졌다. 멋쩍은듯한 웃음을 짓는 최현과 나를 번갈아보며 태민이 형이 같이 술 마셨던 사람들 맞냐며 완전 어색한 사이 같다고 하는대도 내 반응이 시큰둥하니 다시 정적이었다.
“형도 드라마 들어간다면서요 영화도 아직 안 끝났죠? 힘드시겠어요”
“태형이 처럼 잘생긴 애들이 치고 올라오는데 열심히 해야지”
애교 섞인 지민이의 물음에 약을 올리는 건지 놀리는 건지 내 칭찬을 늘어놓는 최현이 낯설어서 술을 들이켰다. 눈까지 맞춰가며 웃어주는데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회피성으로 애꿏은 술만 자꾸 들이켰다. 말없이 술만 들이켜니 걱정은 되는지 몸을 틀어 슬쩍 나를 바라보는 지민이에게 씩 웃어주니까 고개를 떨구는 목덜미가 빨갰다.
거짓말까지 하면서 숨기던 마음이 진심일까 봐 그 날 그렇게 화를 냈지만 지민이가 그렇게 까지 해서 최현을 만나러 갔다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이유가 정말 나한테 질려서 더 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할까 봐 겁이 났다. 기분 내키는 대로 제멋대로인 나보다는 훨씬 더 나을 것 같기도 했다. 어울리는 사람들이 좀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지민이에게는 잘 챙겨주고 다정하니까 괜찮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까지 했다.
“정국아 옷 가지고 왔어?”
“아! 챙겼죠 여기 있어여”
정국이가 옆에 뒀던 옷을 챙겨서 최현에게 내밀었고 받아 든 종이가방을 열어보고는 지민일 바라보며 웃는데 정말 불청객이 된 기분이었다.
“그냥 가지라니까 뭘 또 챙겨 와 아무튼 고마워”
“아니에요 제가 더 감사해요”
“감기는 안 걸렸어? 그 날 너 엄청 젖었었잖아”
눈 앞에서 둘만 아는 얘기를 듣고 있으니 속이 뒤집어 지는것 같았다. 숨기지도 숨기는 기색 없이 같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는 내 기분은 안중에도 없는 지민이가 진짜 미워지려 하고 있었다.
“후우...저 화장실 좀....”
화를 낼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에 결국엔 또 도망이었다.
*
“정국이 괜찮아? 술 더 시킬까? 아 샴페인 갖고 올 걸 그랬나?”
“아 진짜 형! 샴페인에 샴자도 꺼내지 마요”
옆자리에 앉은 정국일 챙겨주는 최현 형 말에 그 날 태형이와 싸운 게 생각나 발끈하고 말았다.
“왜여? 무슨 일 있었어요?”
“왜 재밌었잖아”
“재밌긴 뭐가! 저 그 날 태형이랑 아 아니에요”
“싸웠어?”
알만하다는듯한 눈빛으로 웃는 최현 형은 그래서 나를 죽일 듯이 쳐다봤구나 하면서 능글거리며 웃었고 땡그랗게 뜬 눈으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당황한 정국인 아무 말도 못 한 채 벙쪄있었다.
“네 남친 삐진 거 아냐? 어디서 울고 있을라 찾으러 가봐 너랑 나 신경 쓰여서 화장실은 어떻게 갔나 몰라”
흐익! 숨 쉬는 것도 잊을 만큼 놀란 건지 빠질 것처럼 커진 눈으로 나와 최현 형을 번갈아보던 정국이를 귀엽다는 듯이 보던 형의 덧붙이는 말에 정국인 넋이 나가버렸다.
“정국아 진짜 둘이 귀엽지 않냐? 아 아쉽다니까 정말”
“에?..뭐가여”
“너네 형 전 남친인거?”
“형! 진짜!!”
“야 어쨌든 너네가 사귈 수 있게 된 것도 어떻게 보면 다 내덕이다 너 뭐 조금 괴롭히긴 했지만”
“악 제발 형 그만 좀 해요!”
“뭐가 그렇게 재밌어?”
방으로 들어서는 태민이 형 뒤로 태형이가 보이지 않았다.
“형 태형이는요?”
“어? 태형이 못 봤는데”
잔뜩 굳은 얼굴로 방을 나서던 태형이 얼굴이 생각나서 불안했다.
“정국아 전화 좀 해봐”
불안해하는 나와달리 무슨 일 있겠냐며 바람이라도 쐬러 갔을 거라고 걱정해주는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핸드폰을 꺼낸 정국이가 조금 당황한 듯 하더니 꺼내는 말에 결국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구남친현남친대환장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