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민]화양연화_20
[뷔민]화양연화_20
온몸을 관통하는 아픔과 쓸릴 때마다 올라오는 통증들이 훈장처럼 따라왔고 그걸 표현하고 티 낼 수 없어 신경 쓰고 긴장해 후유증이 며칠은 지속됐던 것 같다.
극점에 달하는 쾌감은 잠깐이었고 함께 살을 부대끼고 있다는 사실이 더 황홀경이었다. 정말 그 뒤로는 눈만 마주쳐도 실실 대던 우리 두 사람 때문에 형들은 도대체 뭔 일이냐며 같이 좀 웃자며 덩달아서 웃었고 영문도 모른채로 웃고 떠드는 바람에 팀 분위기가 좋아져서 힘든 스케줄과 연습들 콘서트 준비도 문제가 없었다.
숙소에 있으면 각자의 개인생활을 하다 보니 서로의 방에 들어 올 일이 잘 없긴 했지만 그 혹시나 때문에 태형이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했던 첫 관계 중에 형들이 들어올까 눈치를 보며 눈 깜짝할 새에 일을 치렀고 마음을 졸이며 사랑을 나눈 그 시간이 애틋하고 소중했다. 마냥 좋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불편함과 멤버들을 향한 기만함에 사실은 너무 힘들었다. 마냥 기쁘고 좋기만 하진 않았다. 앞으로 이 모든 걸 헤쳐나가고 감내할 수 있을까 태형이 손을 놓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부딪히는 현실이 같이 다가왔고 이 행복함이 얼마나 갈까 하는 그 아슬아슬한 경계 속에 있었다.
근데 지민아
나 언제부터 좋아한다고 했지? 첨부터? 아 3학년 때부터... 근데 어떻게 참았어? 나는 지금 니 머리카락만 봐도 두근두근하는데 니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친구로 지냈는지 상상도 안되는데
내 이런 걱정과 불안을 알고 그러는 건지 태형인 가끔씩 부끄러운 말은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생각도 안 하고 있던 다정한 말을 할 때면 고민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또 아무렇지 않아서
이제 제어가 되지 않았다.
"태형아 키스해도 돼?"
"그런 걸 뭘 물어보노"
언제부터 웃고 있었는지 우스꽝스럽게 볼이 실룩거리면서 입술을 쭉 내미는 태형이 때문에 웃음이 터졌다.
여름 내내 까맣게 탄 얼굴이 조금은 남자답게 보이게 해서 그것 나름대로 가슴이 뛰었다. 눈을 꼭 감고 내민 얼굴은 정말 현실감 없게 잘생겨서 한참을 바라봤다.
"뭐야? 왜 안 해?"
고새를 못 참고 눈을 뜨고는 툴툴대는 태형인 웃음이 터진 내 눈언저리에 입술을 가볍게 맞추며 얼굴에 쪽쪽거리며 입술 도장을 찍으며 왜 빨리 안 해주냐면서 숨 넘어가는거 보려고 그러냐며 입술만 교묘하게 피하며 입을 맞춰왔다.
"아! 그만 간지러 흐으"
태형이 냄새가 가득한 침대에 나란히 엎드려 다운받은 영화를 보고 있던 우리는 더위도 모른 채로 꼭 붙어있었다.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만큼 가까웠고 종아리에 스치는 살갗이 뜨거워도 떨어질 줄 몰랐다. 이어폰에서는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대사가 쏟아지고 있고 모든 게 완벽하게 좋아서 뱃속이 간질간질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태형이 입술에 고개를 좀 더 내밀었고 입술이 닿았다. 그저 닿았다가 떨어졌다.
"눈 감아야지"
꼭 이럴 때만. 잔뜩 낮아진 목소리에 발가락이 움츠러들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을 그대로 파고드는 혀에 태형이 아랫입술을 물고 슬쩍 빨아 당기니 단숨에 입술을 집어삼키며 야하게 입천장을 핥아왔다. 엎드려 있어서 고개가 불편해 몸을 뒤트니 뒷목을 콱 잡아서 강하게 끌어당기는 손길에 팔힘이 빠져서 엎어졌다. 어긋난 입술에 푸스스 웃음이 터졌지만 찰나였다.
맞물린 입술이 조급해서 쪽쪽거리는 소리만 가득했다. 내 몸 위로 올라온 태형이 목을 감싸고 품에 더 안겨들었다.
"흐읏..."
혀가 목안 깊숙이 파고들자 숨이 막힐 것 같았고 그럴 때마다 점막을 살살 핥아오는 감각에 몸이 떨려왔다.
영화는 계속 진행 중이었고 서로에게 집중한 우리는 방문이 열리는 줄도 모르고 붙어있었다.
"지금 니네 뭐하냐?"
모래를 한 움큼 집어삼킨 것처럼 까슬까슬하게 굳은 호석이형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자마자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입술이 떨어짐과 동시에 태형이의 눈동자에 비치는 내 표정은 불안이 가득했다.
"형...."
"하! 니네 지금 뭐하냐니까! 이게 무슨"
방안을 들어서다 말고 놀란 형은 방 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하고 그대로 굳어있었다. 태형이와 나도 굳은 표정으로 침대를 벗어나 몸을 일으켰다.
"형 그게... 제가 설명할게요"
태형이가 호석이 형에게 한 발짝 다가섰지만 형은 뒤로 물러서버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호석이 형의 싸늘한 표정에 너무 무서워졌다. 손끝이 저리는것 같아 주먹을 꽉 쥐어도 봤지만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더 이상 설명할게 뭐 있냐?"
그대로 문을 열고 뒤돌아 나가버리는 호석이 형 때문에 놀라서 그대로 얼어버린 나를 뒤로하고 태형이가 따라나섰고 형의 팔을 붙잡았다.
"형 잠깐만요. 잠깐만!"
항상 생글거리던 사람이 화를 내니까 감당이 안됐다 태형이 손을 뿌리치는 형의 모습에 우리 둘 다 다가서지 못했고 소란스러움에 부엌에서 뭘 하던 중이었는지 석진이 형도 놀라서 거실로 나왔고 자꾸만 언성이 높아지다 보니 방안에 있던 형들까지 다 거실에 모여버렸다.
"하아.... 형"
"이제 설명해봐. 다 있으니까 해보라고!"
"호석이 형!"
"왜 말 못 하겠어? 내가 할까?"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윤기 형... 내 애타는 시선이 무색하게 형도 영문 모른 채로 이 소란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알릴 생각은 없었다. 마음에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커밍아웃이라니 형들 말대로 막상 닥친 현실은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어려운 상황이었다. 섣불리 아무 말을 못 꺼내고 있는데 석진이 형이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상기시키려 말을 꺼냈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갔다.
"뭐야? 분위기 왜 이래?"
"호석아 일단 진정해. 나랑 얘기하자"
"김남준 너 알고 있었어?"
불똥이 남준이 형에게 향했다. 날카롭게 따져 묻는 호석이 형의 목소리에 남준이 형은 다 설명할 테니 일단 진정하라며 호석이 형을 다독거렸다.
우리 문제인데 형들이 곤란한 건 싫었다.
"석진이 형, 정국아 그리고 형, 미리 말 못해서 미안해요.
저...태형이 좋아해요"
"지민아!"
"물론 태형이도 절 좋아하고 있구요, 그치?"
목이 매어와서 목소리가 입안에 맴도는 것 같았지만 앞으로 지금 이것보다 더한 일이 닥칠 수도 있는데 여기서 멈추기엔 붙잡은 태형이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정적이었다. 세 사람 모두 제법 놀란 듯했다.
어이가 없겠지....남자인 것도 모자라서 멤버라니
"숨길 생각은 아니었어요... 말하려고 했어요
근데 형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오래가지 못할까 봐 후회할까봐.....
우리 둘이 정말 현실에 부딪혀서 쉽게 지칠까 봐 사실 겁났어요...
형들한테 허락 맡으려고 얘기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인정해 달라는 것도 아니에요. 제가 태형이 손 잡은 것 후회하지 않고 두렵지 않을 때 그때 우리 좋아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얘기할 생각이었어요"
맞잡은 손에서 누구 것인지 모르게 땀이 새어 나왔다.
손등을 살살 훑어오는 태형이의 손가락에 안심이 돼서 마음이 홀가분했다.
"니네 둘만 당당하면 끝이야? 우리는? 우리 팀이잖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너네를 끌어안고 생활하라고?"
"형 우리 방탄에 피해 안 가게 할게요. 진짜 그건 처음부터 태형이랑 약속했어요"
"하! 그러면서 지금 숙소에서 그딴 짓거리하고 있냐?"
호석이 형 마지막 말에 조금 아파서 나도 모르게 움찔했고 태형이가 손으로 다독거려줘도 가슴에 푹 박혀버린 칼날 같은 말에 할 말을 잃어서 그대로 얼어버렸다. 우리가 잘못했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모두가 있는대서 부정당하는 일이 기분 좋지 않았다. 말싸움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제일 먼저 이성을 찾은 건 남준이 형이었고 형은 호석이 형을 데리고 작업실을 간다며 나갔다. 가만히 있는 나머지 두 사람을 보니 지쳐서 설득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깨에 힘이 빠지고 주저앉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은 건지 나를 내려보며 괜찮다고 해주는 태형이와 눈을 마주쳤고 내 눈동자 안에 자리한 태형인 아무 걱정 말라는 미소로 나를 안심시켜왔다.
"헐 저 방금 소름이여. 지민이 형 대체 뷔형 어디가 좋아요? 취향 참"
못볼꼴 본 사람처럼 호들갑을 떠는 정국이 때문에 어색했던 분위기가 풀어졌다.
"얘들아 우리 오랜만에 술 한잔 할까? 형이 또 기가 막히게 안주를 만들었는데 타이밍 참"
석진이 형 주도로 결국에 식탁에 둘러앉았다. 사실 석진이 형도 제정신으로 보이진 않았다. 맏형으로서 책임감 때문이겠지, 폭탄을 터뜨려놓고도 걱정 하나도 없는 태형인 내 옆에 붙어서 대놓고 음식을 챙기며 나만 바라보고 있어서 그나마도 자연스러웠던 자리가 더 어색해져 버렸다.
"진짜 적응 안되네..."
"몰카...아니져?"
계속 힐끔거리기 바쁜 정국 일보며 어색하게 웃어줘도 마음 한편엔 호석이 형 걱정 때문에 눈 앞에 음식도 내키지가 않았다.
"석진이 형, 저도 애들 일 알고 있었어요"
"윤기 너도?"
"네, 근데 그게 애들이 죽을죄를 진 것도 아니고 지네가 좋아서 붙어먹겠다는데 우리가 말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성향 독특 한거야 이쪽에서 흔한 일이고 뭐 그러다 들키면 둘 중 하나는 나가겠죠"
"네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할 말은 없지만, 성향? 그래 그럴수도 있어. 근데 적어도 우리 가족같이 생각한다면 아니 가족이라면 오늘 같은 상황은 아니지 충분히 쟤네 둘도 책임감 가질 나이고 들키지 않았음 너네 얼마나 됐어? 삼 개월? 거봐 지민이 너 성격에 지금까지 우리한테 숨긴 거 보면 너네 얘기 안 할거 아니었어?"
끝나지 않는 우리 얘기에 분위기만 안 좋아져서 다 같이 모이면 그때 얘기하자며 결국엔 얼마 안 가서 자리를 파했다. 우리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내 침대로는 올라가지도 못하고 태형이 침대에 주저앉았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축하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형들이 이해는 해주지 않을까 하는 욕심 때문에.... 이기적인 내 생각 때문에 어긋난 것 같아서 조금 아팠다.
"형들이 반대하면 나 너 없으면 죽어버린다고 할게! 걱정하지 마"
내 옆에 나란히 앉아선 어깨를 감싸 오는 태형이 말에 어이가 없어서 흘겨보니 멋쩍은 듯이 웃는데 진짜 한대 때려주고 싶었다.
"아니... 내가 아까 형들한테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니가 너무 멋있게 얘기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얘기하면 별 도움 안될 거 같아서 가만있었지"
"으이구 자랑이다! 진짜 내가 닐 뭘 믿고"
"걱정하지 마. 형들도 우리 인정하게 돼있어! 오빠만 믿어!"
진짜 대책 없는 김태형 때문에 머리가 더 아팠다.
한숨을 쉬며 머리를 짚으니 머리 아프냐면서 이마에 쪽쪽거리며 입술을 갖다 대는 태형이 때문에 진짜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